노영준 재능대 교수·정보통신과
 이라크 전쟁 파병동의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파병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는 계속적으로 반대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서 앞으로도 국론분열의 양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병동의안 처리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면, 그가 어려울 때 기꺼이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삶의 기본이다. 바로 명분이요, 의리이다. 친구지간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의리요, 믿음이다. 하물며 국제관계에도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한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반전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반전, 반미를 외치며 연일 국회 의사당로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입장은 다른 나라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여야한다.
 만약 6.25 전쟁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낯설은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 고귀한 피를 수많이 흘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번영을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 북한의 실상을 남의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 땅에서는 수백만의 주민들이 식량난에 굶주리고, 병마에 시달리며 인간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6.25가 나고 인천에서 목선을 타고 당진으로 피난 가서 그곳의 어느 해변 마을에서 공산치하를 보냈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은 곡간을 샅샅이 뒤져 다 빼앗아 갔으며, 심지어 밭에서 자라고 있는 옥수수까지 하나 하나 세어 갔다. 먹을 것이라고는 호박풀떼기가 고작이였고 심지어 풀숲에서 개구리 뒷다리를 구어 먹었다. 아버지는 낮에는 인근 산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밤이 이슥해야 집에 돌아오는 공포와 불안의 연속에서 보내셨다. 동네 이장을 비롯한 소위 반동들을 잡아다가 인민 재판 후 현장에서 처형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소래 다리를 건너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어간 모습을 어린 내 눈으로 보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전쟁의 참혹함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 누군가가 이라크를 갔다왔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민간인 99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13만 명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6.25 전쟁의 참상을 보았는가.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지척간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1000만 이산가족의 슬픈 눈물을 당신들 흘려보았는가. 한 민족끼리 이념의 명분 없는 싸움이었지만 미국은 이 땅에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심기 위해서 5만여 명이 피를 흘렸다.
 한반도 전쟁시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력에 의한 공산화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저들은 김정일 단일지도체제로 일사분란하게 단단히 뭉쳐 있지만,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동·서 간, 노·청 간, 여·야 간, 반미·친미 간 갈등으로 국론이 4분 5열 되어있는 데다가 민족자존·민족공영의 환상 속에서 저들의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 노선을 버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어 이미 정신력으로 지고 있는 것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나라만이 살아남을 것이요, 우매한 나라는 파멸의 길로 갈 것이다. 천진난만한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6.25의 민족 비극을 다시 겪게 해주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요, 그들이 평화스러운 세상 속에서 희망과 꿈의 나래를 마음껏 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반전을 주장하는데도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필자도 잘 안다. 6.25와 같은 민족상잔의 대비극이 없었다면,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지만 않는 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고, 반전의 대열 앞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파병반대를 목청껏 외쳤을 것이다. 우리는 반전을 주장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될 것이다. 그리고 파병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내일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미리 방지하자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