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병이면서도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병, 바로 치질이다.
 그래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주고 받기도 하지만 여성들은 ‘치질’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기 조차 꺼린다.
 대장항문 전문의들은 여성에게 치질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파악하고 있으나 병원 내원객수로 따지면 남성이 훨씬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치질을 다루는 대장항문 전문의중 여성은 전국에 1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죽을 병’이 아닌 이상 엉덩이를 남자 의사에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남구 주안7동에 자리잡은 라파엘 여성의원 대장항문과 이선미 원장(35)은 우연한 기회에 치질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대구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계명대 의대를 졸업한 이 원장은 여자로서는 견디기 힘들다는 외과를 선택다. 하지만 보수적인 대구에서는 받아 주는 병원이 없어 서울 강북삼성병원(삼성의료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서 이 원장은 국내 대장항문 권위자인 김광연 당시 과장(77·서울송도병원 원장)을 만나며 외과중 대장항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원장은 “김 원장님이 초짜 수련의나 하는 심한 변비가 걸린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고 변을 빼 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처음으로 항문이 더러운 곳이 아니라 가장 깨끗하고 가장 대접을 받아야 할 곳이라고 느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게다가 당시 간호부장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권위자인 김 과장보다 전공의에 불과한 자신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대장항문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성, 여성이 없을 것 같은 간호부장 마저 남자 의사에게 치료를 맡기기를 꺼리는데 일반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라며 “의사로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보람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이 원장을 말했다.
 1998년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 원장은 그해 독일 Frankfurt 뮤니 대장항문병원과 일본 다까노 병원 대장항문과에 연수를 떠난다.
 독일에서는 주사를 이용해 치료를 할 수 있는 약물요법을 익혔고 일본에서는 3기부터 만성치질에 이용하는 수술요법을 배웠다.
 국내에서는 약물요법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외형적인 수술로 치질을 치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특히 여성들에게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약물치료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1998년 국내 최초로 대장항문 병원 S-K 클리닉을 개원, 여성치질에 대한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한 이 원장은 2001년 의사로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늦은 결혼에 이은 늦은 출산. 출산의 고통이 곧 항문이 빠지는 듯한 고통임을 처음으로 알았단다.
 “40, 50대 환자들이 출산 후 치질이 심해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의학적으로만 알았지 느낌이 오지 않았다”며 “임신과 출산 경험 이후 이제는 손을 꼭 잡고 눈만 마주쳐도 우리 어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이 원장을 말한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인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전문 대장항문과를 연 이 원장은 “수치스럽다고 병을 숨기면 큰 탈이 난다”며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는 것처럼 항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김칭우기자> chingw@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