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
조선희 수필가/시인
 착잡한 마음으로 걷던 걸음에 고개 하나를 넘고 말았다. 저 만치 산허리에 걸린 조각달이 눈을 비벼대기 시작한다. 맞은 편 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답답한 가슴에 사정없이 파고든다. 그 바람 따라 언뜻 딸아이의 음성이 다가온다. “엄마, 정년퇴직후의 날이…, 그러니까 엄마도 계획을…”
 이제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겠는가. 내 삶의 거의를 벌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집착과 현실들이 16년 공직생활로 마무리되어 손에 든 것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막말로 볼 장 다 본 인생이라고 가슴 접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렇잖아도 앞으로의 날이 살아온 세월보다 만만치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차에 마주쳐온 딸아이의 표현에서 나는 예민한 반응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고 딸은 자신의 말에 변명처럼 느껴지는 설명으로 최선을 다하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딸아이의 긍정적 의미가 나타내고 있는 단어에 무수하게 담겨있을 사연들이 연일 생각해도 좋은 쪽으로 연결이 되질 않는 것이다. 그리고 허한 가슴에 잡념만 더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조금만 더 다닐 수 있어도 무언가가 쥐어 질 수 있을 텐데 라는 나름대로의 아쉬움을 보이지 않는 벽 사이로 털어 버리며 떠나가던 선배의 뒷모습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에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 현명해지는 방법이라 하며 그 상황을 적절하게 얼버무려 주려 애썼던 자신이었으면서도 이젠 그가 거쳐간 길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년에 동반되는 환경과 접하면서 자식과 오가는 대화의 부분도 자주 그런 쪽으로 거론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아주 작은 것에 섭섭함과 오해가 뒤따른다. 코앞에 닥쳤을 때에 초연 할 수 있도록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라고 마음먹는다 하여도 삶의 커다란 축이었던 직장을 퇴직하는데 따른 석별은 누구에게라도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실상 불혹의 나이로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인데다 이는 내 가족의 소중한 젖줄로서 홀로서기에 급급했던 생활을 안정으로 이끌어 주었고 따라서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향한 사랑의 가슴을 지닌 정든 동료들과 집보다 더 많이 함께 한 곳 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이제 금년을 마감하며 공직을 떠나야 한다. 욕심이라 해야 할까. 석양의 언덕에서 하산이라는 아쉬움이 서글픔과 범벅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상태로 한도 끝도 없이 빠진다면 쪼그라진 어깨에 가슴마져 좁아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정년 이후의 세월도 나의 인생이거늘 생각의 닻을 돌리지 않는다면 내 안의 갈등으로 껍데기만 남는 벼랑끝 인생이 되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안고 다가서는 정년.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니 걱정과 근심의 시간들만 기억되는데 이제 또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불안하게 할 것인가. 딸아이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렇다. 그렇다면 잘먹든 못입든 최선을 다하여 지켜온 자녀들에게 이제 내가 더 벌지 못한들 미안하지 않아도 되겠지마는.
 정년에 이어 오는 세월이 다시금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삶의 교차로일진대 분명 가슴 빈터에 자리 잡고 있을 크고도 작은 부정적인 잔재의 요소들을 속속 잠재우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다. 생의 종착역이라는 무기력한 생각을 철회하고 시간의 너울을 쓰고 다가오는 주위의 상황들을 수용할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계획의 물꼬를 트고 다시 또 접근해야 되는 어떤 난관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그 길로 향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딸아이가 말하던 긍정의 다른 의미도 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을 내내 사모하기 위함이리라.
 나는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아까부터 먼 데 걸려 있던 조각달이 늦겨울 뼈마디 앙상한 가지사이에 얹혀 게슴츠레 눈 거플을 들썩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