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담
 
 돌이켜 보면 지난 해는 그 어느해 보다도 열기가 뜨거웠던 것 같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성공리에 치러졌고 그로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4강 신회를 창출했으며, 또한 엎치락 뒤치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지금의 서민 대통령도 만들어졌다.
 노도처럼 밀려든 서구문물에 강탈당한 우리의 고유문화가 한두가지 일까마는 그 중에서도 연말연시가 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어린시절 어른들께 새배하고 듣던 덕담이다.
 덕담이란 새해를 맞아서 새배를 받는 어른들이 새배한 사람들에게, 올해에는 소망하는 일이 꼭 이루어지라고 좋은 말을 한가지씩 전해주는 것을 말한다.
 정감이 담긴 덕담을 해주는 것이 우리네 세시풍속의 하나였고 또 미풍양속이었다. 헌데 요즘에는 세배를 하면 배춧잎처럼 시퍼런 세종대왕 몇 장으로 덕담을 대신하고 있으니 인심이 변한건지 덕담을 잊은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덕담을 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는게 안타깝다.
 하긴 앞으로 5년간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마당에도 덕담은 고사하고 욕설을 하는 사람, 악담을 하는 사람, 심지어는 저주를 하는 사람들 뿐이었으니 그러한 모습에서 옛 어른들의 따뜻한 말표현들이 그리워지는 건 나이 탓일까!
 필자가 아는 김할머니는 심신 양면으로 상처입은 사람들, 재기 불능의 요양객들을 수십년 동안 보살펴 온 분이다. 그가 甲木일주(甲은 오행상 木에 속하며 木은 곡직인수(曲直仁壽)라 하여 그 성정이 곧으면서도 인자하기 때문에 일주가 甲木이면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고 본다) 로 심성이 착해서 그런지는 모르나 김할머니는 여간한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 요양의 끝자락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내년 봄에 다시 올까말까한 중환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분들이 산방을 떠날때면 언제나 “내년 춘삼월에 꽃피거들랑 다시 건강한 몸으로 찾아 오세요”라는 말로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그런 김할머니를 보면서 늘 부족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2003년 첫 새벽, 어둠을 헤치고 여명을 알리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癸未年 양띠 해에는 풍성한 덕담이 오가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본다. 다음 ‘돌고 도는 인생’ ☎(032)867-0342 www.yejiye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