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더 이상 증가 막아야

최근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와 이로 인한 신용불량자 증가, 금융기관 가계대출 부실화 우려 등이 경제적·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3·4분기말 가계부채 잔액이 지난해 말보다 82조원이나 늘어난 4백24조원으로 GDP의 75%에 달하고 가구당 평균 부채는 2천9백만원으로 올 들어 6백만원이 증가했다. 한편 11월말 신용불량자수가 2백57만여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경제활동인구 열명 중 한명꼴로 신용불량자가 늘어나고 신용카드사들의 평균 연체율이 10%를 넘어섰다.
가계부채 급증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채무자인 가계에 있다. 지난해 초부터 지속된 저금리 추세에 편승해 상환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린 가계가 크게 늘어났다. 한편 가계가 빌린 돈은 저수익 금융상품 대신에 부동산으로 몰려 아파트 값을 폭등하게 하면서 다시 부동산 구입을 위한 대출수요로 이어져 가계대출 증가를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소비가 취미’라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식의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것도 가계빚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채권자인 금융기관도 가계대출 급증과 부실위험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 부실로 사상초유의 금융기관 퇴출과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던 금융기관들이 위기극복 이후 기업대출에 있어 신용도에 따른 선별적인 대출취급 원칙을 강화하면서 신용도가 낮고 담보가 없는 영세기업들은 대출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반면에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과 일부 중소기업들은 저금리 덕분에 유동성에 여유가 생긴데다 경기 불투명으로 투자를 꺼려 대출수요가 부진하였다. 이런 가운데 넘쳐나는 보유자금의 적절한 운용처를 찾지 못한 금융기관들은 건당 대출규모가 작고 채권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개인대출에 치중하였다. 아파트 담보가 있거나 신규분양 때에는 차입자의 소득이나 신용을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대출세일에 나섰고 신용카드 남발과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무절제한 여신공여를 통해 가계대출 부실위험을 자초했다.
이밖에 경제성장을 위해 부동산 경기 부양 등 내수 진작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과소비와 부동산 거품을 초래한 경제정책 역시 가계부채 급증의 배경이 되었음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다.
IMF 구제금융까지 이르렀던 외환위기는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와 이로 인한 금융기관 부실에서 비롯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채는 줄어든 반면에 이제 가계부채 과다로 금융기관의 부실위험이 다시 커지고 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겨우 정상화된 금융기관이 가계부채 부실로 인해 또다시 부실화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현재의 경제여건에 비추어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지만 이제라도 각 경제주체의 각별한 자기반성을 통해 더 이상 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계는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소비행태로 과소비를 자제하고 차입수요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기관은 여전히 담보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영업행태에서 벗어나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고 자금용도도 꼼꼼히 따져 대출을 취급하는 등 리스크 관리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정책당국도 신용불량자에 대한 개인워크아웃제도와 같은 사후적인 수습방안에 그치지 않고 가계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강구하는데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가계부채 급증의 중요 요인이 부동산 경기 과열에 있었음에 주목해 수요와 공급측면을 망라해 부동산 투기를 지속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을 재검토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서 정 도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