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인천사람…
시립극단 예술감독 박은희
 70년대 초, 시국이 어지러울 때에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하는 날로부터 대의명분 없는 큰 싸움에 휩싸여서 진통을 겪어야 했다. 필자가 입학한 학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였는데 새로 병합한 서라벌예대의 7개학과 중에 연극영화학과만이 이미 문리대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합쳐 놓은게 화근이 된 것이었다. 문리대 연극영화과가 어쩌구… 서라벌연극영화과가 어쩌구… 하면서 싸움이 일어 난 것이었다. 골이 깊었다. 그 당시에 필자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까닭을 모른 채 고초를 겪어야 했다. 우선 양쪽 선배들의 주장이 달라서 입학기수 계산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교내 집회를 불허하던 때였는데 마치 운동권이라도 된 듯이 쉬쉬하며 옥상으로 이끌려 가서 칠판에 그려진 서라벌 교가 악보를 보며 독립운동가 처럼 힘차게 선창하는 선배를 따라 불러야 했다.
 신입생인 우리들은 “서로 연극을 더 잘한다고 우기다가 일어난 싸움인가보다” 고 짐작하기도 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교훈은 중앙대 교훈을, 교가는 서라벌 교가를 기억한다. 그 후 얼마간은 매 학기 복학하는 선배들에 따라 상황이 나빠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 당시 나라를 걱정하여 목숨마저 바친 우리 또래들을 생각하면 같은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살아 남는 과정의 한 시기를 대의 명분 없는 싸움에 휘말려서 지낸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다.
 다행히도 졸업 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결자해지란 말이 있듯이 한 선배님의 제의로 입학기수는 따지지 않고 입학년도를 알 수 있는 학번으로 말하기 시작 했으며 ,양쪽 출신 선배들이 학과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함께 CF에 출연하고 그 모은 액수가 약 15억에 이르자 학교의 지원을 받아 대학로에 학과 전용극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양쪽 동문들이 손잡고 중앙예술인회를 결성했다.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서라벌이냐 문리대냐를 따지지 않는다. 서라벌에 입학만 하고 군대 갔다와서 중앙대로 복학을 했든, 단 한 과목만 흑석동에서 공부하고 중앙대 졸업장을 받았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양쪽 학교의 옛날 선배님들까지 모두 같은 선배님으로 인정하기로 중앙예술인회에서 다짐했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흐뭇한 일이다. 아울러 지금의 후배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주실 많은 선배들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편가르지 않고 잘 섞이려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미래를 밝게 해 주기도 한다.요즈음 예술계는 나라도 초월해서 - 물론 지역이나 출신 따위는 따지지 않고-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서 ‘크로스 오버’ 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개성을 살려서 잘 섞는 작업에도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인천은 아직도 인천사람, 인천출신을 너무 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시립극단은 올해 12명의 신입 단원을 선발했는데 6명이 인천에 살고 있고 시화,광명, 일산에 각1명, 그리고 3명이 서울에 살고 있다. 그 들은 인천에서 태어났는지, 인천에 살다 이사를 갔는지, 중 고등학교만 인천에서 다녔는지, 등을 따지지 않고 응시했던 사람들 중에 실력 순으로 선발되었다. 그들이 마음 편히 연극작업 할 수 있도록 인천사람 적게 뽑았다는 공격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인천에서 태어난 필자마저도 하지 않아도 될 엄연한 사실을 자꾸 반복해야 하는 것이 싫다. “나도 인천 사람이에요” 이 말을 그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천사람이세요?”라고 묻기 전에 많은 외지 사람들과 잘 섞이려 노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인천의 미래가 밝게 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