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당시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허례허식과 과소비를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결혼식장에 축하화한의 숫자를 제한함은 물론 영결식장의 조화 숫자까지 엄격히 규제를 하여 벌금을 물리고 위반자의 명단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런 규제는 허례허식과 과소비를 억제시킴으로써 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식사 대접조차 금지시킨 과잉조치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서민들은 ‘집 팔고 소 팔아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하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사조차 못하게 한다’며 볼멘 항의를 털어놓기도 했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저명인사의 애경사 행사장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환이 늘어서 있는 광경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화환을 기증한 하객 중엔 자신의 과시를 앞세우기 위해 화환 자리다툼까지 벌인다고 하니 냉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가정의례준칙을 부활시킨다면 과거와 달리 행사규모와 하객의 초청범위에 대한 규제를 새로 정해야 할 것 같다. 개개인의 양식에 맡길 문제이지만 친분이나 평소 왕래가 없었던 분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특히 선거구 관내 지방자치의원이나 정치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어 물심양면의 부담을 안겨주는 일은 민주 지방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러 단체 활동을 하다보면 자신의 애경사에 회원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치른 후 슬그머니 모임을 탈퇴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집안의 큰 행사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입회하는 회원도 볼 수 있었다. 목불인견은 자신의 환갑잔치 초청장을 여기저기에 발송하는 행태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도 70세를 훨씬 넘게 되었다.
 유아 사망률이 높던 과거에는 생후 1년까지 출생신고를 미루고 건강상태를 지켜보다가 돌잔치를 치른 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리쉬며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아홉수’라 불리는 쉰아홉살 고비를 넘기면 한평생 60년을 무사히 잘 살았다며 가까운 이웃 친지들을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한 행사가 바로 환갑잔치였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서 환갑내기는 경로당에 들어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일흔살은 넘겨야 그나마 노인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고령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은 핵가족화되었고 개인생활에 충실하다보니 웬만한 대소사가 아니고는 타인과의 연락을 자제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치러야 할 행사인 환갑잔치와 심지어는 손자의 돌잔치까지 타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부담을 주는 이들이 있다. 요는 그들 중에 사회단체의 수장 감투를 쓴 지도층 인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자신의 가족끼리 치러야 할 행사에 다사분망한 내빈들을 초청하겠다면 축의금을 정중히 사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리를 빛내주시어 감사하다며 선물을 안겨주어도 부족한 마당에 감투를 앞세워 산하 회원들과 내빈들로부터 당연한 듯 축의금을 접수하고 있다.
 속셈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짓이다. 과연 초청자가 단체의 수장이 아니었다면 초청장을 남발할 수 있었고 초청을 받은 하객 역시 울며 겨자먹듯 억지로 참석했을까.
 21세기의 새로운 가정의례준칙은 정부의 강제성 규제가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에티켓을 스스로 지키는 일이며 이것은 사회지도층 인사부터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