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차라리 배낭여행을 가자>
 기자가 지난 2000년 6월 당시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을 출입하던 기자들과 중국 구이린(桂林)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갑천하(甲天下·천하제일)’라 중국인들이 자랑스레 치켜세우는 산자수려한 구이린의 산수를 둘러보고 상하이(上海)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위해 저녁무렵 공항에 들어섰다.
 마침 다른 곳에서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한 무리의 승객들-주로 유럽쪽 사람들인 듯-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섞여있는 일단의 행렬에서 기자는 한동안 눈길을 거둘 수가 었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반백의 장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족이 함께 온 듯 20여명은 족히 됐다. 그러나 정작 시선을 끌었던 것은 그들의 차림새였다.
 두툼한 운동화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타킹, 울긋불긋한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목에 둘러맨 손수건과 눌러쓴 모자. 등에는 하나같이 저마다 각자에 어울리는 배낭을 맨 채였다.
 “아! 바로 저것이로구나.” 외국여행을 나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는 좀체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친구들이건 가족들과 함께건 꼭 한번-그 이상이면 더욱 좋지만-배낭여행을 가서 여행의 고단함과 참맛을 흠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오지여행이나 문명탐험 관련 신간이 나오면 득달같이 서점에 달려가는 버릇이 생긴 것도 딱히 꼽으라면 그 때 이후였다.
 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뒤 지금까지 가장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돼오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문제다. 10여년 동안 정말 숱하게 많은 의원들이 각종 명목으로 외국을 다녀왔으며 언론을 통해서도 그야말로 나갔다 온 횟수만큼이나 많은 지적이 뒤따랐지만 지금도 여전히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이곳저곳에서 지방의원 또는 자치단체장들이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관광성 외유’니 ‘시민혈세 낭비’니 하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사실 외국에 나가 색다른 이국적 정취에 난생 처음 접하다보면 누구든지 국내에서의 골치아픈 생각은 저만치 접어두고 한번 실컷 즐기고 싶은-마음껏 마시고, 보고, 먹고, 사고-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모두의 해외여행이 이렇게 시작돼 끝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방의원들이라고 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의회 의원들 싹쓸이 쇼핑 물의’, ‘△△의회 의원들 술먹고 추태’, ‘□□의회 의원들 비행기 안에서…’ 등등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잘못된 ‘해외연수’ 행태를 꼬집는 보도를 신물나게 보아온 터다.
 이런 와중에 현지에 가서 혹 어느 시설을 둘러보았다거나 누구를 만났더라도 그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을리 있겠는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남는 것은 양손에 가득 쥔, 두툼해진 보따리뿐일 수밖에 없다면 지나친 말일까?
 일반 국민들이 외국에 나가 무분별하게 돈을 쓰고 오는 것도 여론의 질타를 당하는 마당에 하물며 ‘세금’으로 경비를 충당하는 의원들이랴!
 나라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국가 안에서도 지역간에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가고 있는 요즘이다. 살림을 책임진 공직자나 주민대표인 의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요청되는 실정이다. 지난 4월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방문했던 호주 퀸즈랜드주 현지 한인들이 “의원들만 와서 적당히 차만 한잔 마시고 가지말고 실질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체들과 함께 동행해 달라”고 지적했듯 철저한 세일즈외교에 나서거나 한 사람의 관광객이라도 더 유치할 수 있는 홍보활동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이것저것 열거해 따져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제도가 쉽사리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또 설사 바뀌더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의원들이 외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당부하고픈 말은 있다.
 제도를 확 바꿀 생각이 없다면, 비싼 돈 들여 연수 다녀와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면 의원들이여, 차라리 배낭여행을 떠나라. <이인수·경기본사 취재총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