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후보 단일화인가?

홍 득 표(인하대 교수·정치학)

이번 대선은 역대 선거에 비하여 희한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선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아직도 대선구도가 유동적이다. 엊그제 중앙당을 창당하면서 집권당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도 한다. 반창반노 성격의 제3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대선 전 야당이 분열하는 모습에 익숙해 있던 한국정치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의 집단 탈당과 철새 행각으로 여당이 사실상 분당되었다. 대선후보 경선에 불복하고 뛰쳐나온 후보는 있었지만 국민경선으로 선출한 후보를 고립시키려고 핵심당원이 탈당한 보기 드문 사태도 일어났다. 이번 대선의 최대변수가 될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2위와 3위 후보간에 단일화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후보 단일화 협상은 고착화 가능성이 높은 1강2중 대선구도를 깨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으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 패배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궁여지책임에 틀림없다. 노 후보는 정 후보가 제안한 TV토론 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선정방식을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여론조사 대상을 놓고 팽팽하게 맞선 가운 데 양후보간 단일화 담판 회담을 갖는다고 한다. DJP 대권공조 협상은 1년여동안 진행되었다. 대선 40여일 전인 1997년 11월 3일 합의에 이르렀는데 이제 막 시작된 대선후보단일화 협상은 오는 27일 후보등록전까지 매듭지어질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신뢰성, 객관성, 오차범위 등에 대한 시비와 후유증은 없을지 걱정스럽다.
후보단일화 협상은 본질을 외면한 채 단일화 절차와 방법론에만 매달려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첫째, 후보단일화의 목적과 명분 등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단지 반이회창 세력의 결집으로 대선에서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목적이라면 설득력이 없다. 정치는 실리도 중요하지만 명분이 있어야 당당해질 수 있다. 정치혁명과 새정치를 주장하는 두 후보가 정책이나 이념 그리고 정치적 성장과정 등 유사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지 이회창 대세론을 꺾어보자고 의기투합한다면 반창야합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후보단일화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후보 단일화의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 대선 구도를 2강으로 변화시켜 결국 단일후보쪽으로 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 반전의 기회가 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선거 전문가들의 예측은 엇갈리고 있다. DJP 대선공조는 지역당간 선거제휴이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났다. 특정지역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어 무조건 따라가는 확실한 고정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자의 지지표를 합산하면 이길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보다는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조건 없이 따라갈 수 있는 견고한 지지층이 있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셋째, 정권을 잡았을 경우를 대비한 정부구성안과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승리가 너무도 절박하여 사전에 정부구성 문제를 확실하게 합의하지 않고 우선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심산이라면 설사 집권하더라도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대선 승리만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야합한 DJP 공동정부가 실패한 교훈을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유례가 없는 공동정부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정치이념이나 정책노선상의 차이도 컸지만 권력공유의 절차와 규범이 생소한 가운데 합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풍토와 오직 권력나눠먹기만을 위한 야합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는 무엇보다 집권했을 경우의 정부구성과 국정운영 방안을 국민에게 분명하고 명쾌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다자구도에서 필패가 예상되는 2, 3위 후보간 단일화를 모색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대선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왜 단일화인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