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 경기의 후퇴 조짐과 함께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사회 일각에서는 상식을 초월한 과소비 행태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삼백만원짜리 유모차, 천오백만원짜리 신사복이 팔리는가 하면, 일억원짜리 침대에서 십억원짜리 스포츠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메가 프라이스’라 불리는 초고가상품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20대 젊은이들에게까지 번진 외제명품 선호풍조가 가세하면서 올해 고급 사치성 수입상품 소비는 지난해의 배 이상 늘어났다. 7월말까지 수입 자동차 판매대수가 작년 같은기간보다 103%나 증가했고, 수입 TV는 8월말까지 133% 늘어 작년 증가율의 3배를 넘었다. 수입 세탁기와 에어컨 소비도 각각 120% 이상씩 증가하고 수입 모피의류 역시 112% 늘어 작년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이와 함께 ‘빚을 내서라도 쓰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차입성 소비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2·4분기 외상 및 할부구매,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을 통한 가계의 차입성 소비는 7조 9천4백45억원으로 전체 소비의 9.1%를 차지해 2000년 6.9%, 지난해 6.5%에 비해 차입성소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실질소비지출은 전년대비 4.3% 증가해 실질국민총소득증가율(1.3%)을 크게 상회한 데 이어, 올 상반기중에도 소비지출증가율(8.1%)이 국민총소득증가율(6.9%)을 초과하고 있다.
이에 반해 88년 40.5%로 정점에 달했던 우리나라의 국민총저축률은 그 후 계속 하락해 지난해 29.9%에 머문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26.9%로 82년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정부저축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데 반해, 가계저축률은 98년까지만 해도 26.6%로 일본, 대만보다 높았으나 2000년에는 역전돼 일본(16.3%)과 대만(16.1%)에 비해 낮은 15.4%로 떨어졌다.
가계저축률의 이같은 하락은 최근 소득수준 향상과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으로 장래소비를 위한 저축보다는 현재소비와 여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소비가 늘어난 때문으로 여겨진다. 부동산가격 급등에 따라 대규모 자산이득이 발생한 것도 소비를 고급화·대형화시키면서 고가의 수입소비재를 중심으로 가계소비지출을 확대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저금리 지속, 소매금융시장 급성장과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등으로 저축 유인이 줄어든 점도 저축률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레져 선호경향 확산과 신용카드 보급 확대는 젊은층의 과소비와 저축률 하락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올 상반기중 25-29세 청년층 가계의 소비지출증가율은 18.6%로 소득증가율(10.0%)을 웃돌 뿐만 아니라 전체가구 평균 소비증가율(7.1%)에 비해 매우 높았던 반면, 이들 가계의 저축률은 97년 34.1%에서 올 상반기에는 23.9%로 줄어 하락폭이 가장 컸다.
불과 수년전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외환위기는 과도한 경상수지적자와 이로 인한 외채누적 등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효율을 무시한 과잉투자 외에도 90년대 들어 저축에 대한 인식이 쇠퇴하고 저축률이 계속 하락함으로써 투자재원의 상당부분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데 그 원인이 있었다.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 끝에 우리 경제가 재기하긴 했지만 국민들의 저축에 대한 관심이 계속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부유층에 이어 젊은이들에게까지 과소비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모두가 경계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소비수요는 경기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만 과도한 소비에 의해 주도되는 성장은 물가불안을 초래해 오히려 성장의 과실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경제의 주체인 가계가 적절한 소비지출로 수요를 창출하되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소비행위로 과소비를 피하는 한편, 저축을 통해 투자재원의 국내조달을 가능케 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늘 10월 29일은 서른아홉 번째로 맞는 ‘저축의 날’이다. ‘저축의 날’이야 기억하지 못해도 저축의 중요성만은 잊지 말아야 할 오늘이다.

서 정 도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