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
수도권에 수많은 사찰이 있지만, 생각보다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인천에는 딱 2곳뿐이었습니다. 그중 한 곳인 인천 전등사에 2023년 초파일(5월 27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다녀와 봤습니다.
산사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나요?
전등사 템플스테이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체험형(①삼랑성 숲 이야기, ②쓰담 쓰담)과 휴식형(한 박자 쉬고)인데요. 체험형은 ①삼랑성 주변 숲을 체험하는 것과 ②스님과의 차담, 법문 듣는 시간이 포함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일정을 누릴 수 있는 휴식형은 사찰 예절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체험형과 휴식형 모두 예불, 범종 타종, 공양, 운력 등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합니다.
국내에서 처음 템플스테이가 시작된 계기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내를 찾은 외국인들의 숙소가 부족해 이를 돕기 위해서였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그래서인지 전등사에도 오래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 것을 배려해 통역 전담 직원을 고용해 보다 깊이 있게 사찰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만큼 '보물'처럼 쌓인 이야기들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 6점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국가사적 제130호인 삼랑성 안에 자리한 전등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물만큼 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뒤 10여 년도 채 안 돼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인 데다 1866년 조선 시대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끈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승전의 역사가 담긴 호국 불교의 산실입니다. 게다가 전등사는 창건 당시 가람*(스님들이 모여 생활하고 수행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요. 이 가람 구조는 성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반 사찰과 달라 역사적 가치가 크죠. 대웅보전(보물 제178호)도 타 사찰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다른 조선 중기 목조 건물보다 훨씬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선보이고 곡선이 심한 지붕을 얹은 특별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대웅보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숨겨져 있는데요. 바로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 손바닥과 머리로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과 관련된 전설입니다. 과거 조선 시대 전등사의 건물이 불에 타 새로 짓게 됐을 때의 일입니다. 이 대웅전 건축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 주막의 주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는 공사가 끝나면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며 돈이 생길 때마다 주인에게 맡겼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공사가 끝나기 직전, 그 주인이 돈을 챙겨 달아나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슬픔에 빠진 도편수가 대웅보전에 그녀를 닮은 여인상을 새겨넣었다고 하네요. 평생 그녀가 고통받길 바라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부처님의 말을 새기며 반성하길 바랐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뜻은 오직 그만이 알겠죠.
또, 전등사 입구에는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도 자리 잡고 있는데요. 꽃이 피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 수탈을 일삼던 관리들이 전등사에 있던 이 은행나무 열매까지 탐욕의 손을 뻗자 스님이 며칠간 기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스님께선 다신 은행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떠나셨고 그 뒤로 다신 은행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 과거 관리들의 횡포를 보다 못한 은행나무가 하룻밤 새 자신에게 매달린 은행을 다 떨어뜨리고 다시는 은행을 맺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랜 역사만큼 전등사 경내에는 모두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 나무 하나 허투루 볼 수 없습니다.
예술 작품 속으로 걸어가…'지극한 마음으로'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 예불은 15분 남짓으로 길진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적힌 경전을 봉독(奉讀, 남의 글을 받들어 읽음) 하는 것도 한글로 다 풀어 쓰여 있어 처음 오신 분들도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고요. 이 예불 시간이 끝나면 스님의 목탁 소리와 기도 소리에 맞춰 108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불을 드리는 곳인 전등사의 무설전은 단순히 법당이라기보단 과거와 현대가 융합된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금빛' 부처님과 '강렬한' 탱화 대신 우유 빛깔의 부처님과 보살님들 자리 잡고 계시고, 후불탱화가 젖은 회벽에 물감을 스며들도록 해 일반적으로 서양의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인 프레스코로 그려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죠. 고개를 들어 무설전 천장을 빼곡히 채운 999개의 연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정하게 일렁이는 설치 미술이 구현하는 아름다움에 한동안 말을 잃게 됩니다.
전등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전등사는 조석(朝夕) 예불 끝났을 때가 정말 '절간' 같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게 1박 2일 동안 전등사의 명장면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지체 없이 전등사의 밤이 내려앉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먹빛 어둠 속 꽃처럼 피어난 연등도 무척 아름다웠지만 제 발걸음 소리가 선명히 귓가로 들려오던 그 순간, 단연 최고였습니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거든요. 평소 느낄 수 없는, 그런 고요니까요.
소란하지 않게, 천천히…사찰의 아침이 시작됐다
하루에 단 한 번 어떤 소음도 섞이지 않은 채 경내를 퍼져나가는 목탁 소리와 스님의 차분한 목소리.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같은 시간에 경내에 있는 모든 만물을 놀라지 않도록 서서히 깨우는 의식인 도량석은 설명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근사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울리던 알람과는 감히 비교하기도 죄송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한 편의 멋진 공연 같았다고나 할까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 아이들이 왜 따라다녔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하루를 무척 존중받으며 시작하는 기분, 잘 살아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사찰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또 밤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볼 수 있었던 1박 2일. 하룻밤이지만 오가며 만난 스님들과의 적당한 거리 속 짧은 대화와 눈 맞춤도 편안하고 달가운 쉼표가 됐습니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너무 적극적이어서 정말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위로들에 조금 버겁다면 혼자서 한 번 걸으러 가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채나연 기자 ny1234@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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