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래 외국행 출구·근대화 시발점 역할
인천·서울 20대 '항구도시·국제도시' 인식
변치 않는 지리적 특성·향후 지향점 알려줘
21세기 들어 문화의 사회적 역할 조명 받아
문화도시 기반 예술인 활동·시민 문화 역량
국제적 아트 페스티벌·문예 교육 강화 필요
한국 근대문학에 나타난 인천은 '외부 세계에의 통로'로서, '낭만적 동경을 꿈꾸게'하고, '근대적 여가와 관광'을 누리며 '노동'과 '일확천금'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이러한 성격의 도시 정체성은 식민 지배라는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바깥과의 통로가 '강제적' 성격의 개항으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인천의 비극이자 기회라는 점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 속의 인천
한국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외국으로 나가는 출구인 인천은 1883년에 개항되어 국제도시가 됐다. 인천항에서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졌고,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에서 121명의 한국인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동한 것이 한국 최초의 이민이다.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1906)의 주인공 옥련이가 배를 타고 일본을 향해 출발한 곳도 인천이다. 또한 바다와 항구, 개항장의 외국풍 건물들 탓에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시편들에는 미지의 세계와 서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짙게 배어있다. 김소월을 비롯해서 정지용, 김기림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시인들이 당시 인천의 모습을 모던한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국에서 조탕과 해수욕장이 있는 월미도 유원지를 찾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인 각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꽃놀이를 즐겼다. 신항 건설, 경인철도 부설 등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1930년대 일제가 대륙 침략을 감행하면서 인천항 근처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며 공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된다. 강경애의 <인간문제>(1934)는 이런 시대의 변화와 비참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오늘날 선물거래소와 같은 인천미두취인소는 일제가 미곡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1896년에 개설하였으며, 주로 미곡과 대두를 거래하며 투기 거래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인들을 유인하였다. 당시 “땅문서는 동척(동양척식회사)으로 들어가고, 현금은 인천에 떨어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인천은 항구도시, 국제도시이다
최근에 '차세대 미래상권의 사업화 전략 방안' 연구진이 인천·서울 거주 만 20~29세 청년 400명에게 조사한 '인천시와 가장 어울리는 도시이미지'의 결과가 흥미롭다. 인천의 MZ세대는 32%가 '항구도시', 30%가 '국제도시'라고 응답했으며, 서울의 MZ세대는 46%가 '항구도시', 24.5%가 '국제도시'라고 응답했다. 개항 이후에 14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사람들에게 인천의 이미지는 '항구도시'이고, '국제도시'인 것이다.
바다는 인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람과 문명이 넘나들고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고, 섞이고, 충돌하는 가운데 살아야 하는 운명을 부여했다. 이렇듯 인천의 지리적 환경은 인천의 변하지 않는 특성이 무엇이고,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항구도시'를 지렛대로 삼아 '국제도시'로 나아가라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나 인천의 근대를 관찰한 문학인들이 표현한 인천의 모습과 현재 인천의 모습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시의 풍경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고 현재의 모습은 자의에 의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와 도시발전
문화의 세기라 불리는 21세기 초입부터 문화와 도시의 상관성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 대두됐다. 사회결속과 공동체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문화의 속성에 더해 문화의 사회적 역할이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가 2000년에 발간한 <창조도시>(The Creative City)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문화와 창의성의 가치는 '도시개발, 산업, 교육, 복지 등 여러 가지 정책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광의적 개념'(홍종열, 2014)으로 확장되었고, 문화정책은 종합적인 도시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됐다.
유럽연합은 1985년부터 매년 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를 선정하고 있으며,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창의 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 사업을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2014년부터 '동아시아의 의식, 문화교류와 융합, 상대문화 이해'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매년 한·중·일 각 1개 도시를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하여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을 이루고, 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차에 걸쳐 총 24곳을 문화도시로 지정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11개 도시(이천시, 서울특별시, 전주시,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통영시, 대구광역시, 부천시, 진주시, 원주시, 김해시)가 유네스코 창의 도시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열린 도시, 인천
인천에서도 도시발전에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은 일찍부터 제기됐다. 인천시에서 최초로 수립한 문화예술 분야 중장기 발전계획인 <인천광역시 문화예술 중장기 종합발전계획>(2003년)은 문화를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핵심 요소로 판단하고, 인천의 특성을 살린 문화도시 발전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연구의 결과로 시민 중심의 문화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국제 문화도시로의 발전방안을 마련하고자 '창조적 국제 문화도시, 다문화 공존 융합도시'를 인천의 비전으로 제안했다. 이후에도 계기마다 수립된 인천시 문화정책의 곳곳에서 국제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예술가와 시민의 창의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인천연구원에서 글로벌 문화도시를 '지역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향유, 활용, 연구, 교육, 산업을 활성화하여 상호이해, 다양성, 창의성을 증진하고, 문화를 매개로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구축한 도시이자, 창의적인 도시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도시'로 개념화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시민이 행복한 글로벌 문화도시 인천'을 위한 발전 방향성을 '글로벌문화 네트워크 구축', '예술인이 성장하는 창의도시 조성', '문화시민으로의 역량 향상 지원', '디지털과 지역 문화유산 융합'으로 제시한 점도 기존의 인천 문화정책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문화도시의 토대는 도시의 창의성을 견인하는 예술인의 존재와 활동 그리고 시민의 문화 역량이다. 예술인이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국내외 예술인이 인천을 자주 찾고, 머무르며 인천의 예술인과 교류를 확대하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결과물을 전세계인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교류·협력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기존 예술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성과를 확대하는 한편 국제적 수준의 아트 페스티벌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시민의 문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300만 도시에 걸맞는 규모로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디지털 인천문화예술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1000명 규모의 예술인과 작은 문화공간, 학교 내 유휴 교실 등을 연결하여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나가, 예술인과 시민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천은 진작부터 글로벌 문화도시의 기본을 갖추고 있었다. 전국의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모여 현재의 인천을 만들었고, 전 세계의 시민들이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며 세계로 나가는 출구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도시는 인천이 세계도시로 성장하는 원인이며 결과이다. 인천이 글로벌 문화도시로 가는 길은 개방성과 포용성을 더욱 넓히고, 환대의 문화를 형성하는 열린 도시로부터 찾아야 한다.
/손동혁 인천문화재단 문화공간본부장
/공동기획=인천일보·인천학회·인천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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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는 관광지라기 보다는 가끔 옛스러운게 남아있는 짜장면 거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