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 움베르토 에코의 부고에 그분의 텍스트들을 읽고 감화받았다는 소회를 남긴 이들이 많았다. 에코는 중세 미학과 종교 기호학을 전공한 학자였지만, 우리에게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와 같은 역사 추리소설과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세간의 부조리에 대해 촌철살인 비판을 하는 칼럼 모음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학, 역사, 철학과 사회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탐색해온 에코의 작업 중에서 가장 이채로운 분야는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했던 <장미의 이름>을 비롯한 역사 추리소설일 것이다.
<장미의 이름>은 살인자를 쫓는 추리소설의 구조를 답습하여 쓰였지만, 중세 전문가인 에코의 작품이니만큼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에코는 교황과 황제 간 서임권 투쟁과 교권 내부 청빈 논쟁이 한창이었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가상의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플롯으로 삼았다. 등장 인물들은 교황과 황제 간의 암투와 청빈뿐만 아니라 유럽으로 역수입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 사이의 충돌에 대해, 이단 발흥과 처단에 대해, 요한계시록에서 예언된 종말의 진위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요컨대 <장미의 이름>이란 책은 중세 철학사, 중세 정치사, 중세 기독교 교리사를 소설화한 '중세 사상사'로 읽는 것이 좋은 독서 방법이다.
에코는 서문에서 중세 수도사의 유실된 수기를 번역하여 출간하려 한다고 눙치며,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는 중세 신학자의 경구를 인용한다. 책이란 지식을 담고 있는 물건이니, 책이 있는 구석방이란 수많은 지식을 한곳에 모은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이 경구는 소설의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장서관과 수도원 또한 세계를 함축한다는 알레고리로 사용한 것이며,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세상의 종말을 증명하듯, 장서관과 수도원이 화재로 소실되며 결말을 맺는다.
수도원과 장서관의 숨은 주인인 호르헤 수도사가 자신의 세계를 멸망하게 한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문제의 장서관에만 소장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권에 담긴 희극에 대한 내용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내용이 유통되면 기독교 교리가 망가질 것이기에 이를 막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뜻이”요, “그래서 주님 뜻대로 하였다”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했다. 호르헤는 지식과 진리를 보존하는 예언자라고 자부했지만, 수도원에서 “이러고 있을 동안에, 저 아래 도시에” 사는 “세간 사람들”은 “서책의 문화를 교역의 문화”로 비유할 만큼 이미 지식은 유통되고 있었고 세상 또한 변하고 있었다.
에코는 지식과 이념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이해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진리가 사회에 유통되었을 경우, 그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해악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했다. 특정 세력에 의해 자행되는 지식 독점과 거짓 예언자가 발흥하지 못하도록 항상 주위를 살피는 데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야말로 에코가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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