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준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현대중국학회 회장]

30년간 흑자 낸 '대중국 무역 성적표'
올해 1분기 80억 달러 적자 기록
경제적 윈윈 구조 느슨해진 탓

상호 인식 개선 없인 미래보장 못 해
우호적인 여론 조성 바탕으로
지방정부·민간단체 간 협력 다지고
청년세대 교류 확대 등 노력해야
▲ 인천시는 지난해 한중수교 30년을 맞아 양국 청년들 간 소통을 위해 '한중청년탐방프로그램 2022'를 진행했다. 참여 한중 대학생 30여 명은 인천 곳곳을 돌아보며 지역명소를 해외에 홍보하고 상호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제공=인차이나포럼 사무국
▲ 인천시는 지난해 한중수교 30년을 맞아 양국 청년들 간 소통을 위해 '한중청년탐방프로그램 2022'를 진행했다. 참여 한중 대학생 30여 명은 인천 곳곳을 돌아보며 지역명소를 해외에 홍보하고 상호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제공=인차이나포럼 사무국

한중 관계가 뿌연 황사에 갇힌 것만 같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정도의 차이일 뿐 어두침침하기는 매한가지다. 수교와 함께 시작된 한중관계의 봄날이 사드 갈등으로 된서리를 맞더니, 코로나19의 창궐로 왕래의 발길마저 뚝 끊겼다. 최근 리오프닝 국면에서 또 비자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었으며, 황사 발원지와 관련해서도 당국자들 사이에 날 선 말이 오갔다. 양국 국민의 서로에 대한 감정도 거듭 악화하여 인터넷에는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하늘길이 새로 열렸지만, 문화교류 계획 등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중관계의 봄날에도 크고 작은 갈등은 많았다. 굵직하게는 마늘 파동과 동북공정이 있었으며, 문화유산 강탈 논란, 모방·복제 논란, 불법 조업 문제, 환경 문제 등은 그 세부 소재만 바뀐 채 수시로 언론과 인터넷을 달구며 상호 비방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해 왔다. 그런데도 한중관계의 봄날이 지속된 것은 원만한 관계 유지를 통한 기대이익이 훨씬 크다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국은 역내 안보 이슈의 중요한 변수였고 엄청난 무역 흑자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던 기회의 나라였다. 중국은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우리의 자본, 기술, 경험을 필요로 했고 중국견제론에 대처하면서 우리와의 관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체제와 이념의 다름을 떠나 경제와 안보 영역에서 서로 보완적이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다. 게다가 한중관계 함수의 두 주요 변수인 경제와 안보가 비교적 독립적으로 작동하여 고비 때마다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경제-안보 연동체제와 한중관계 함수의 변화

경제와 안보 변수의 작동 방식은 사드 배치 관련 갈등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무역 갈등은 관세 조치로, 안보 갈등은 외교로 풀어가던 기존의 방식과 달랐다. 이른바 한한령은 안보 갈등을 경제 변수와 연계한 것이어서 그 충격의 체감이 컸다. 어떤 면에서 이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국제적 차원의 무역-안보 연동체제의 서막이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물려받은 바이든 정부는 팬데믹에 이어 러-우 전쟁으로 인해 불안해진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며 배타적인 경제-안보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와 가치동맹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 연동 추세를 현실적 조건으로 전제하고 대외관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서 모호한 태도보다는 확실하게 미국 쪽에 줄 서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명료함에 따른 이익이 한중관계 악화에 따른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이 제시된 후 받아든 대중국 무역 성적표는 충격적이다. 30년 동안 7000억 달러의 흑자를 낸 대중국 무역수지가 지난해 2분기에 적자로 돌아서더니 올해 1분기에만 8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반도체를 뺀 나머지에서는 대부분 적자였으니 무역수지 악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중국 경제 회복의 지연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중 양국의 경제적 윈-윈 구조가 약화한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가 경제-안보체제의 핵심 품목이 되었으니 무역수지 악화는 자명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전기차 배터리와 보건의료 부문 등, 새로운 윈-윈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안보 연동체제에서 새로운 호혜·공생 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미지수이다.

▲ 연령대별 중국인의 한국 이미지 평가 (그래픽 위)·한국인에 대한 관심도(그래픽 아래). /자료=해외문화홍보원(2022), 2021년도 국가이미지 조사 보고서:54, 56 그림 재편집
▲ 연령대별 중국인의 한국 이미지 평가 (그래픽 위)·한국인에 대한 관심도(그래픽 아래). /자료=해외문화홍보원(2022), 2021년도 국가이미지 조사 보고서:54, 56 그림 재편집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 악화와 개선의 가능성

한중관계의 경색은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전 역사나 문화유산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된 적도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도나 호감도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드 갈등 이후로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연히 증가했다. 중국도 그렇지만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변화는 더 두드러진다. 혐한, 혐중 심리를 자극할 만한 기사가 양국 언론에 넘쳐나고, 수많은 ‘화나요’나 ‘엄지척’이 달린 댓글과 함께 인터넷과 SNS 공간에서 퍼뜨려진다. 혐오를 조장하는 일부 언론의 프레이밍도 문제지만, 상대국 혐오 정서의 주된 소비층이 10대와 20대라는 점은 특히 우려스럽다.

국내외 여러 조사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낮아진 것에 비해 관심도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기대이익이 줄어들면서 커진 실망이 낮은 호감도로 반영되었겠지만, 서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상대국 방문 경험이 있거나 지인이 있는 경우 긍정적 답변의 비율이 높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혐한 정서의 주축인 중국 Z세대가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도와 교류 의향을 표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호혜·공생 관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처럼, 양국 국민의 교류가 미래지향적인 관계의 자양분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이다.

필자의 바람과 달리, 경제-안보체제는 한동안 우리 대외관계의 현실적 조건으로 작용할 것 같다. 미중 패권경쟁의 구도에서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가지 패를 하나로 묶어 꺼낸 이상, 한중 양국이 언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갈등에 휩싸일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가 국익이라는 필터를 통해 대외정책의 기조를 냉철하게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한중관계의 변동성을 완충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기제를 구축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해 보인다. 중앙정부의 입장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지방정부 간 교류의 활성화, 공통의 관심사와 이해관계에 기반한 각종 민간단체 간의 교류 확대, 향후 양국을 이끌어갈 청년세대의 교류 지원 등, 요컨대 기층교류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수교 이래 축적된 각종 기층교류의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팬데믹의 위세에 눌린 후 방치되어 있다. 리오프닝의 국면에서 탈중국과 같은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만나볼 결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 장호준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현대중국학회 회장
▲ 장호준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현대중국학회 회장

 /장호준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현대중국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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