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월 유럽에서 혁명의 열기가 다시 불타올랐지만, 나폴레옹 퇴장 전후 동맹을 맺어 더는 혁명의 씨앗이 싹트지 않기를 바랐던 유럽 지도자들의 굳은 의지에 좌절했다.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 직전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선동하는 팸플릿을 작성했다. 그들이 서문에서 쓴 것처럼 유럽 지도자들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퇴치하기 위하여 신성동맹을 맺고 있”었다. 2월 혁명과 1871년 혁명은 대호황 시대를 맞이한 유럽에서 한갓 전설로 잊혀 갔으며 <공산당 선언>도 치기 어린 젊은이들의 선동 문건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처지였다. 그러나 이 팸플릿은 사라지지 않고 전 세계 피압박 민중들에게 전해져 현실사회주의 혁명의 복음서로 주목받던 때도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극적인 수사법으로 프롤레타리아들의 단결을 요구했기 때문에 불온한 공산주의 선전·선동용 책자로 백안시되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경과를 탁월하게 분석해낸, 이 분야의 개론서로 읽으면 매우 유익하다. 그들이 분석한 부르주아계급의 등장 과정을 살펴보면, "중세의 농노에서 처음으로 도시의 성 밖 시민이 생겨났고, 이러한 성 밖 시민에서 부르주아계급이 가진 최초의 요소들”이 발견되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계급이 이 과정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칭송하며 이 책의 주인공이 부르주아들임을 암시한다.
부르주아들은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정치적 제도”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제도의 확립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지배"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납세 의무를 지닌 군주국의 제3신분”이었고, “공장제 수공업 시대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적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균형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물적 생산토대를 담당한 부르주아들은 “대군주국의 주요 기반”이자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세워진 이후에는 마침내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까지 쟁취했다. 경제적 성취를 바탕으로 한 부르주아들이야말로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로써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들이 단결된 모습으로 부르주아계급의 위상을 제압하기를 염원했지만, 힘이 모자랐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본 전 세계 피압박 민중들은 흥분해 마지않았으나 부르주아들이 창출한 질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생존 기반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균열이 생길 때마다 바로 수습해가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참여하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유연함 대신 체제경쟁이나 내부 단속에 몰두하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견제받지 않는 부르주아들의 전횡을 비판하기는 쉬우나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효준 월급쟁이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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