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퇴위옌 도서관 방문
창의성 제고 기능·설계 등 주목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거죠.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도 청소년의 시각에 기회를 열어줄 수 없을까요”

지난달 30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 지역 퇴위옌 도서관 내부가 이 같은 논의로 분주했다. 교육정책의 미래를 공부하기 위해 선진 사례를 직접 찾은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이하 교행위) 소속 의원들의 모습이었다. 도서관은 한국에 흔한 도서관의 개념과 전혀 다른 혁신 공간이면서 ‘지역 공동체’가 숨 쉬는 곳이었다.

▲ 지난달 30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 지역 퇴위옌 도서관에서 리너트 미더셀(Reinert Mithassel∙오른쪽) 관장의 설명을 경기도의회 관계자들이 듣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지역 퇴위옌 도서관 내부에 있는 특별한 구조물. 책 읽는 공간을 창의적으로 바꿔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도서관, 아이와 지역 구성원을 품다

도서관 건축물은 빨간 벽돌과 통유리로 감싸져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치 유행하는 커피숍을 연상케 했다. 10~15세 어린이만 이용하도록 한 전용 공간은 독특함의 정점을 찍었다.

커다랗고 작은 차량 2대와 스키장에서나 보는 곤돌라가 ‘책 읽는 자리’다. 한쪽에는 연극을 펼쳐도 될 정도의 커다란 무대가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모여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드럼통은 책상으로, 새장은 책장으로 쓰인다. 모두 버려질 물건이었는데, 예술적 감각으로 구조를 바꿔 재활용했다. 심지어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공중전화 박스를 통해 연결됐다.

공간은 자율적인 배치를 추구했다. 예를 들어 스키장 곤돌라는 천장 레일에 연결돼있고, 자동차는 바퀴가 있기에 아이들이 원하면 옮기면 됐다. 무대 뒤편은 화물차 윙바디(적재함)가 자리해 때에 따라 다른 공간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아이들은 추가 배치 등의 의견도 상시로 제시할 수 있었다. 이용자 중심의 운영 덕에 기업이나 민간단체에서 기부(한해 총 예산 100만 유로∙한화 약 14억2000만 원)도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음악·미술·요리·놀이 등의 각종 프로그램도 매주 운영되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 달에 찾아오는 이용자 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 주로 오후 2시 이후로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계층의 아이들이었다.

애초 퇴위옌 도서관도 다른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책을 빌리고 읽는 곳이었다가, 2015년부터 지역사회에 돌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지금과 같이 시스템을 개선했다.

만 6세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노르웨이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에 해당하는 아이의 관심사, 신체 능력 등에 맞춘 방과 후 돌봄을 의무로 제공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하지만 5학년 이상, 10세가 넘는 아이들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는 이주민과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공간 및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었다. 최근엔 전쟁을 겪은 우크라이나 이민자가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은 모든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동참할 수 있고 함께 공간도 사용했다. 도서관에서 주민 간 소통, 문화 다양성 존중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돕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리너트 미더셀(Reinert Mithassel) 퇴위옌 도서관장은 “책상을 늘어놓고 책만 가득한 도서관이었지만, 이젠 모든 사람들이 친화적으로 지내고 즐겁게 활동하는 공간이 됐다. 무대 공연만 해도 주민과 아이 100명 이상이 모인다”며 “역대 찾아온 각국 기관 중에 경기도의회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줬고, 뜻깊은 대화를 하게 돼 좋았다”고 전했다.

교행위 의원들은 도서관을 둘러본 뒤 △경기도 도서관 형태와 비교 △자율적 구조 배치의 장단점 △국내 도입 시 해결 과제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그룹별로 나눠 원탁에 앉아 논의하거나 도서관 관계자와 1대1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됐다.

정하용·김옥순·윤태길·심홍순·김영기 의원은 아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높여주는 도서관 기능에 주목했다. 또 기성세대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김일중·김회철·이자형·이은주·장한별·문승호 의원은 도서관이 최소한의 공간 구성과 재활용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고, 모든 계층을 배려한 도서관 설계의 강점에 공감했다. 이들은 해외 사례의 연구가 보다 활발해야 하고, 도서관만 아니라 학교 등의 전반적 교육 공간에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원찬 교행위 부위원장은 “도서관이 책을 빌리고 읽기만 하는 공간에서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복지까지 이뤄지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건 세계적 추세이고 국내에서도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될 것”이라며 “경기도가 선제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률 부위원장 역시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독서모임을 갖는 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며 “코로나19를 겪으며 단순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문화와 여가 생활을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했다.

▲ 노르웨이 오슬로 지역 퇴위옌 도서관에선 트럭 차량을 개조해 책 읽는 색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노르웨이 오슬로 지역 퇴위옌 도서관에 있는 정중앙 무대. 이곳에서 책 읽기는 물론 공연 및 각종 놀이가 이뤄진다.

 

▲‘교육의 나라’ 연달아 벤치마킹

도의회 교행위와 집행부 등 20명은 노르웨이로 시작해 스웨덴·핀란드 3개국을 연달아 방문하고, 주요 기관을 찾아가 벤치마킹할 예정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동등한 교육의 기회, 학생복지 등이 잘 갖춰진 ‘교육 선진국’으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핀란드는 초등부터 대학까지 무상 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융자 등 장학혜택을 두고 있다. 각 학교와 교육시설도 정형화돼있지 않고, 지역이나 이용 학생 특징 등에 맞춰 운영되고 있다.

엘리트 체육과 운동부 육성 전문교육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게일로 지역 토피드레츠짐나스 학교에서 학생들과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의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엘리트 체육과 운동부 육성 전문교육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게일로 지역 토피드레츠짐나스 학교 내부를 둘러보면서 학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달 29일 출발한 교행위 국외 일정은 기관 소재지가 멀리 흩어져 있는 여건 속에 지역 경계를 넘나들며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오슬로 퇴위옌 도서관에서 시작해 219㎞나 떨어진 게일로 지역 토피드레츠짐나스 학교(엘리트 체육·운동부 육성 전문교육)로 이어졌고, 앞으로도 수백㎞를 이동해 △프리슈셋 학교(시설재생·방과 후 프로그램) △발링스네스 학교(초등 커리큘럼·이용자 배려 설계) △사우스 타피올라 학교(정규교육과 IB교육의 융합) 등에 갈 계획이다.

이곳에서 교행위는 기관 관계자 면담, 경기도 정책 개선분석 토론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김미리 도의회 교행위원장은 “이번 벤치마킹은 국외연수 심의 이전부터 의원들이 수개월 간 인구 1360만명에 달하는 경기도의 교육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계기를 찾자는 취지에서 고민을 거듭한 결과”라며 “의원들은 선진국을 찾아가 그냥 탐방만 하는 게 아니라 그곳의 정책과 교과 운영, 방과 후 돌봄, 급식 지원 등 교육현장을 생생하게 접하고 즉석에서 공부하는 열정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과거 연수 과정에서 배운 해외 평생교육 우수사례 중 일부가 현재 경기도 교육정책에 녹아 있듯, 지금 직접 체감한 경험 또한 향후 실질적인 도입을 위한 시도로 이어질 것”이라며 “교육의 발전과 아이들을 위한 정치는 당리당략과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가 사례를 배우고 공론화하는 등의 끝없는 노력을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오슬로=글∙사진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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