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 임병구 인천바이오과학고 교사

지난 4년 동안 '어쩌다 교장'이었다. 조심스러웠으나 자신이 있었고 그만큼 가라앉으려 애썼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교장에 오른 선배들을 만나면서 안정감을 배웠다. '교포'(교장 포기), 혹은 '교양'(교장 양보)이라며 승진에 초연한 동료들은 시시때때로 나를 긴장시켰다. 교장이었지만 교장 아니어야 했고 교장의 의무에는 철두철미해야 했다. 어느 때는 고독하기도 해서 교장으로 점프한 이들 사례를 파고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분투하는 돈키호테들에게서 용기를, 햄릿들에게서 인내를 얻었다. 공모를 통해 교사에서 바로 교장으로 점프한 대다수는 혁신을 위해 불안에 몸을 던졌다. 들끓는 마음을 따르느라 평탄한 일상에 안존할 수 없었다.

'교장공모제'가 겪어온 운명이었다. 여전히 이름조차 생소한 '내부형교장공모제'는 공고한 교장 승진 제도를 바꿔냈다. 8차선 고속도로 옆에 샛길 하나 여는 데 20여 년을 소요했다. 정진화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기존의 승진 경쟁 체제 밖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해 온 교사들도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2013, 서울대 대학원)고 평가했다. 그는 남한산초, 거산초, 조현초 등 학교 사례가 경기도에서 혁신학교 운동과 만나며 교장 리더십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학교 변화를 갈망해 온 교사들이 교장 역할을 하면서 혁신교육 마중물이 되었다.

인천에선 2015년에야 내부형 공모 교장이 나왔다. 인천형 혁신학교와 평교사에서 교장으로 직행한 리더십이 만났다. 아침 등교 풍경을 바꿨고 토론을 거쳐 학교 제반 사안을 결정했다. 교장을 공모하면서 문제를 유출한 충격적 사건은 부끄럽고 아프지만 제도를 보완해 취지를 살려가야 한다. 임기를 마친 내게는 편지글이 남아 지난 4년에 의미를 부여한다. “교장 선생님, 학생은 어떤 존재이며 교사로서 저의 모습은 어떤가를 되돌아보게 해 주셨습니다.” “다른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게 점프는 혁신에 대한 무한 도전이었다. 거대 조직이 안정감에 나른해질 때 치고 나가는 선수는 경기장에 파동을 일으킨다. 우리 교육이 제도를 통해 내부형 교장들에게 기대한 떨림이다. 샛길에서 뛰었지만 이목을 끌었고 공과를 돌아볼 경험이 쌓였다. 인천교육에 지속해서 의미를 더하려면 두 갈래 길이 있다. 결이 다른 교장이 되고자 점프했던 결기를 품은 교육행정가가 될 수 있다. 교사의 자리로 되돌아가려 번지점프를 감행해도 좋겠다. 내게는 2017년 번지점프 경험이 있다. 등 떠밀려 뛰어내렸고, 등을 떠민 이는 교육감에 출마하려다 접고 인천을 떴다. 덕분에 인천예고에서 문학 수업을 하며 교장으로 재점프할 탄력을 쌓았다.

인천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지만 내부형 교장을 거친 이들이 쌓은 역량을 재배치하는 일은 과제다. 혁신을 주도해 온 교육청은 공모 교장을 혁신 행정가로 발탁해 교육 전반을 아우르는 지도력으로 키워 냈다. 그들이 안목을 넓혀가면서 우리 교육을 전환하자는 흐름을 만들었다. 학교 경험을 확장해 교육청을 혁신하고 여러 교육청과 교류했다. 자연스럽게 교육 전반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었다. 학교와 교육청, 교육청과 교육부를 엮어 수평 소통이 이뤄지면 거기서부터가 변화다. 인천교육청이 혁신교육에 애정이 깊을수록 함께 그려야 할 큰 그림이다.

제도를 운용한 지 15년이 지났다. 공모 교장들의 경험이 쓰임새가 있다면 조밀하게 진로를 설계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오래 준비해 안정감 있게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과 변화에 몸이 달아 점프한 교장이 조화를 이뤄야 우리 교육이 더 다채롭다. 위로 점프는 가능한데 후속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교장 임기를 마친 이에게 설명도 없는 인사 조처는 5년 전과 다르지 않다. 두 번째 번지점프를 하며 묻는다. 인천교육청에 공모제 연계 혁신 전략이 있기는 한가?

/임병구 인천바이오과학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