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사찰을 얘기할 때 전등사(傳燈寺)가 주로 거론된다. '천년고찰'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졌다. 마니산(472.1m)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반도 배꼽에 해당되는 마니산은 엄청난 지기(地氣)를 자랑한다. 정상에 오르면 인천 앞바다와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다. 여기선 개천절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 성화(聖火)를 채화한다.
등산객들은 대개 계단과 능선을 따라 마니산 정상을 밟고 남동쪽 함허동천 기슭 정수사 쪽으로 내려온다. 정수사는 전등사·보문사와 더불어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찰 중 하나이다.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회정선사가 참성단을 참배한 후 삼매정수할 곳으로 정해 절을 세우고 정수사(精修寺)란 이름을 지었다. 그 후 조선 세종 8년(1426) 중창한 후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정수(淨水)로 고쳤다고 한다.
정수사는 작지만 고즈넉한 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보물 제16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맞배지붕집이다. 앞쪽에 툇마루를 만들고 길게 지붕을 내린 점이 특이하다. 대웅보전 문살엔 빼어난 문양이 들어 있다. 꽃병·모란·연꽃 등이 섬세하게 조각됐다. 길가부터 절까지 숲길이 이어지며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 가볍게 돌아보기에 아주 좋다.
이런 정수사가 화마(火魔)에 휩싸일 뻔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산불이 발생해 절 부근까지 번져서다. 마니산에 산불이 발생한 때는 지난 26일 오후 2시44분. 마니산 초입에서 난 불이 한때 정상 부근까지 확산되자, 반대편 산 중턱 정수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초 발화지점과 정수사 사이 거리는 1.2㎞. 산불은 27일 0시께 사찰에서 불과 500m가량 떨어진 지점까지 퍼지며 다가왔다.
산림·소방 당국은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면서 국가지정 보물인 정수사 법당을 지키려고 방어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소방 당국은 소방차 3대와 소방관 12명을 정수사에 배치했고, 법당 주변에 계속 물을 뿌리면서 화재 확산을 막았다. 산불은 축구장 30개 규모의 산림 22만여㎡를 태우며 맹렬한 기세로 번지다가 이날 오전 주불을 잡았다. 정수사 관계자들도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국내에 건조주의보가 지속되는 가운데 산불에 대한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들은 긴장의 끈을 내려놓지 말고 '꺼진 불도 다시 볼' 마음가짐을 유지했으면 싶다. “새는 쉬고자 할 때 숲과 나무를 골라서 앉는다”란 경구가 있듯, 순간의 선택이 화복(禍福)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늘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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