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갯벌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하다. 드넓은 갯벌이 자연정화 활동으로 수많은 혜택을 제공해서다. 육지도 바다도 아닌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며, 하천에서 바다로 유입된 육상의 오염 물질을 분해하는 등 마치 정화조 구실을 한다. 갯벌의 정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래서 흔히 갯벌을 '자연의 콩팥'이라고 부른다. 갯벌이 사라지면 우선 해안 양식장 어패류에 피해를 주고, 장기적으론 해양자체를 오염시키게 된다.

국내에서 인천 강화도 남단 갯벌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강으로부터 많은 퇴적물이 유입되면서 연안에 담수 영향을 부분·계절적으로 미친다. 지금의 강화도 해안선은 간척사업으로 큰 변화를 겪었는데, 강화도 남쪽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주요인이라고 한다. 인천과 강화도 연안 갯벌의 경우 수도권과 근접한 탓에 숱한 개발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계에선 소중한 자연유산인 갯벌을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천 갯벌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그만큼 가치와 중요성 등의 면에서 인식을 함께하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천의 갯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다. 급기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협력단을 발족해 과제를 떠맡았다. 지난해 5월부터 간담회 등 논의를 거쳐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톨릭환경연대·강화도시민연대 등 59개 단체가 결합한 결과다. 이들은 향후 범시민 서명운동은 물론 인천시·지자체 등과 공조·소통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지난 22일엔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갯벌세계자연유산등재추진 시민협력단'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인천 갯벌은 우리의 긍지이며 세계인의 보물이다.” 이들 단체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문화재청과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와 인천시, 각 지자체에서 인천 갯벌의 세계유산 2단계 등재 추진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21년 7월 서남해안 중심의 '한국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오른 후 이번엔 인천 갯벌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현재 강화군 갯벌·연수구 송도 갯벌·중구 영종도 갯벌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2단계 등재 후보지로 꼽힌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관건이다. 주민들은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결정되면 갖가지 규제에 직면하게 된다며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주민들이 추가로 받는 규제가 없다는 사실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무튼 인천이 세계유산을 품은 도시로 미래세대에 귀중한 자산을 물려줄 날을 기다린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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