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좋아요'나 '공유' 등의 방식으로 공감을 많이 얻은 콘텐츠를 보면 짧은 메시지가 적힌 이미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잘 다듬어진 유려한 필체로 써진 것도, 전문가가 찍은 듯한 사진이 배경이 되어 색다르게 시야를 넓혀주는 것도 많았지만, 하필 A4용지에, 영수증 뒤편에 투박한 글씨로 적힌 작가 박근호의 글들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내 머릿속에 불이 꺼진 단어들을 다시금 켜줬기 때문이다.

▲ 박근호 작가 작업실 한편에 붙어있던 흔적들.

'사람' 박근호는 다양한 그의 글 속 단어들처럼 그만의 궤적을 이곳저곳 넓게 찍어가며 걸어왔고 "세상 모든 곳에 글쓰기가 있다"고 믿는다.

벌써 7번째 책을 펴낸 그는 스스로 전보다 제법 프로다워진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집-회사와 같은 일상은 이번 책을 준비하던 작가 박근호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글을 쓰기 위해 후회 없이 노력했다는 그에게선 글쓰기를 업으로 둔 자의 자부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 《사랑할 기회》 박근호 지음, 히읏 출판사

사람과 사랑, 그리고 일상에 대한 산문집인 《사랑할 기회》는 어쭙잖은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지나치게 서정적이지는 않다.

대신 '박근호스럽게' 적당한 생활감과 낭만이 묻어있을 뿐이다.

관성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괜찮아'와 '사랑해'가 난무하는 요즘, 누구나 경험해볼 법한 서사와 표현으로 독자만의 유일한 시간을 갖게 해준다.

작가의 짧고 긴 여러 글 속에서 독자는 그의 삶에서 좋았던 순간, 나빴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무리하게 들떠 있던 기분은 가라앉히고 여전히 얹혀있던 기분을 누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그래.

혼자 그러면 이상해 보이는데 같이 그러면 좀 괜찮아 보인단 말이지.

-'우산'(P.36) 중

갑자기 내린 비에 혼자 우산 없이 서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우산 없이 맨몸으로 뛰기 시작하면 '나도 뛰어볼까' 싶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때론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너무 속상한 일이지만 마냥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불행'(P.91) 중

2020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코로나라는 극악한 바이러스를 견뎌온 우리같이….

 

책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경험에 독자가 쉽게 가닿을 수 있는 까닭은 '평이'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없이, 멋을 부리지 않은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까.

단순히 메시지 전달에 그치는 감성 에세이와 콘텐츠 범람 속에서 작가 박근호의 《사랑할 기회》는 내 감정에 대한 답을 찾을 기회를 주기에 귀하다.

어느새 벌써 봄이다, 우리에게도 나 자신, 또는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를 한 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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