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종 안산환경재단 대표이사·정치학박사.<br>
▲ 윤기종 (사)남북민간교류협의회 공동대표·정치학 박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 별로 기록한 기록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2077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부 다 읽으려면 하루에 100쪽씩을 읽어도 4년 3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릴 만큼 방대한 양이다.

임금조차도 볼 수 없었던 가장 내밀한 기록인 이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불가(不可)' 즉 '아니 되옵니다'로 무려 6만5000 번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은 무시무시한 절대 왕권의 시대이지만 조정에 사간원을 설치하여 국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하도록 하였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관리들을 등용하여 올바른 정사를 도모하고자 노력하였다. 비록 삭탈관직으로 벼슬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멸문지화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용기 있게 바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조선왕조시대에도 적지 않았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가장 평화롭게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하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지금 윤석열 권력에 대해 “아니 되옵니다!”를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그 주변에 몇이나 될까? 아니, 대통령의 잘못된 주장이나 지시에 대해 당당하게 “불가(不可)”를 외치는 사람이 이 정부와 여당 안에 있기는 있는 걸까?

오늘날 한-일 간의 최대 쟁점은 강제동원 문제, 위안부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일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한국에 귀책사유가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이 양보할 것은 없다.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하면 끝날 일들이다. 그것이 한-일 간 미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일본 피고 기업이 아닌 한국 재단이 대신하는 '제3자 변제'를 국민을 위한 국가적 결단이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다. 국민의 60% 이상이 굴욕 외교라고 반대하고 있고 피해자들이 전면 거부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인 일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이런 결정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주변에 “아니 되옵니다”를 말하는 자가 없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이 탄생한 지 대통령 선거일 기준으로는 1년이 넘었고 취임일 기준으로는 1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무지, 무능, 독선 등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평생을 검사 이외의 일에 종사한 바 없으니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소화하기엔 다소 무지하고 무능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독선'이다.

윤석열 정부는 합법적인 노동조합에 '귀족노조'의 딱지를 붙여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야당과 시민단체 등 반대편을 종북 세력이나 부정부패 세력으로 몰아 끊임없이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다. 집권 10개월이 지났지만 야당 대표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만날 생각도 없어 보인다. 협치는 없다는 선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나라가 이렇게 급속도로 망가지고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어 가고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세력'이 '아무 짓이나 저지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 민주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살아야 정상인데,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독선'을 공언하고 있다. 여당조차 소위 윤심을 등에 업은 지도부의 출범으로 친정체제가 확립되었으니 바른말의 기대는 난망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언론과 깨어 있는 시민들이 외쳐야 한다. “아니 되옵니다.”

/윤기종 (사)남북민간교류협의회 공동대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