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중국 후한의 채륜이 종이 제조술을 발명하면서 인류 문명사에 소통의 혁신적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나 계급과 지배와 복종의 사회적 모순 속에서 소통은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 적이 많다. 묵자는 지배계급의 화합과 쾌락과 신분과시를 위한 유가의 음악을 반대했다. 민중과 소통이 없는 그래서 민중의 이익에 맞지 않은 귀족계급의 음악을 비난한 것이다. 묵자의 비악론(非樂論)이다. 인천 출신 미학자인 고유섭도 1940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미술의 불행은 “일반인의 이해가 너무 적은데 있고 우리(본국) 미술을 토석처럼 버리고 있다”며 “일반 민중의 미의식의 향상은 그 사회의 미의식의 향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인과 대중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예술교양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이다.

유럽에서의 미술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유통과 수집 의한 소장품 위주의 전시가 활발해 진다. 그러나 미술관이 소장품의 유지 관리에만 그치지 않고 예술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복합적 역할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다. 건축가들은 철로 역과 시장 등 열악한 도시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킬 문화충격으로서의 대안이 필요했고 미술관의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방치되었던 도시의 일정 구역을 도전적인 미술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면서 미술관은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건물 외부를 강철 골조 지지대에 의한 하이테크적 표현을 구사한 퐁피두 센터는 혁신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현대미술관인데 핵심 키워드는 대중과의 소통에 있다.

설계에서부터 작품 기획전시까지 대중과의 소통으로 미술관의 기능을 돋보이는 곳 중 하나는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이다. 2019년에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에서는 아와주 기요시의 'WHAT CAN DESIGN DO'라는 유작전이 있었다. 반전, 반핵, 제3세계의 사회 변혁을 주제로 작품을 해온 디자이너였는데 재일교포 예술인과 한국 작가들과도 교류가 있었던 분이다. 그래서 그의 전시 한쪽 벽면에는 특별전으로 한국의 민중판화전이 기획되었으며 필자는 작품 출품과 함께 특별 강연자로 초대받았다. 인구 46만의 소도시인데도 2004년 개관이후 관람객 수가 연간 1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연 500만 명의 관람객 수를 유지하는 영국의 데이트 모던미술관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도쿄의 롯폰기 모리미술관과 함께 일본의 3대 미술관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미술관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기존의 미술관들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담당 큐레이터인 리츄코 타카하시에 의하면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설계와 전시기획까지 100여 회의 시민 포럼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며 건립했다고 한다. 또한 밝고 개방적인 건축 설계로 편히 쉬고 머물고 싶은 미술관으로 방문객의 심리적 측면을 적극 수용하였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에 관한 최효준 관장의 연구 논문을 보면 미술관 명칭도 관의 부속기관처럼 보이는 '시립' 글자를 빼고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으로 결정했으며 '마루비(まるび, 丸美)'라는 동그란 형태의 미술관을 부르는 애칭을 사용하여 시민들로부터 호응이 컸다고 한다. 특히 당시 야마테 시장이 가정주부가 앞치마를 두르고 잠깐 들를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 달라고 건축가에 주문한 것에서 편안하고 개방적인 미술관으로서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인천뮤지엄파크 설계 공모는 '경관의 기억'이 선정되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4만1170㎡ 부지에 함께 지어야 하는 빠듯함이 있어 보이지만 시민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고, 자주 가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친근하며 소통하는 미술관 박물관이 되길 기대해 본다.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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