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잔재 청산 조례, 화성·도 교육청 등 6곳 있어
道 행정 기구·정원 조례 등 사무분장 법제화 제안
경기도 노래, 친일 작곡가 대체 노래 공모 발표

104번째 3·1절. 집집마다 걸리던 태극기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 도로변으로 걸어둔 태극기를 보고나마 3·1절임을 알아차린다. 애국심을 망각한 문제보다 더 뜨거운 문제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우리 주변으로 남아있는 일제잔재들이다.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화두는 항상 뜨겁게 던져진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 지는 77년, 대한독립을 외친 지는 무려 104년째가 됐지만,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일제잔재들이 3·1절이 있는 이맘때쯤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우린 여러 일제잔재 속에서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친일 화가들의 행적을 주목하고 잔재 청산이 어디쯤 와 있는지 과연 그들의 작품이 '위대한 걸작'이 맞는지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봤다.

▲ 지난 23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 현장 답사를 추진하고 홍난파 노래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지난 23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사업 현장 답사를 추진하고 홍난파 노래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일제잔재청산 어디까지 왔나

자치단체의 일제·친일잔재 청산 조례 제정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시기는 3·1 운동 100주년인 2019년부터다. 이후 2021년까지 총 29개의 조례를 제정해 관련 지원 사업의 제도화를 추진해 왔다.

2019년 4곳의 광역·기초단체에서 제정되던 조례는 2021년 18곳까지 늘었고, 현재 29개의 일제잔재 청산의 조례가 제정됐다.

경기도는 화성시를 시작으로 경기도교육청, 하남시, 경기도, 고양시, 부천시 등 6곳에 조례가 있다.

각각 ▲일본 전범기업 제품 등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화성) ▲경기도교육청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 사용제한(경기도교육청) ▲하남시 일본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제한의 관한조례(하남) ▲경기도일제잔재청산에 관한 조례(경기도) ▲고양시 일제잔재 청산 지원에 관한조례(고양) ▲부천시 일제잔재청산 지원에 관한 조례(부천) 등이다.

▲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일제잔재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현장이다.
▲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일제잔재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친일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현장이다.

경기도는 일제잔재 청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우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경기도의회는 2013년 경술국치일에 조기게양 내용을 포함한 '경술국치일의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건의안'을 통과시켜 현재는 모든 광역지자체가 경술국치일에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또 2019년 11월5일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를 출범하면서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의 친일청산 작업을 독려하고 친일청산 업무가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경기도 행정기구 및 정원조례'와 '경기도교육청행정기구 설치조례 시행 규칙' 등 사무 분장을 법제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 경기도교육청은 서울교육청과 함께 2016년 박근혜 정권과 수구 언론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 반대운동과 지역 내 모든 중·고·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했다.

특히 경기도는 2019년 초부터 친일작곡가 이흥렬이 작곡한 '경기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노래를 공모해 2020년 12월 새로운 경기도의 노래인 '경기도에서 쉬어요'를 발표했다.

이 밖에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 포털서비스를 구축하고 2020년 2월부터 일제상징물 안내판을 경기도 내 17곳에 설치했다. 이처럼 일제잔재 청산 확산에는 우호적인 국민 여론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2월26일 한국갤럽에 의뢰한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1%가 친일청산이 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친일청산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정치인·고위공무원·재벌 등에 친일파 후손들이 많아서가 48.3%로 가장 많이 응답했다. 3·1혁명 정신의 계승방법에 관한 질문에도 '친일잔재 청산'이 29.8%로 가장 높았다.

 

“친일잔재청산법 도입 급선무… 정부 나서야”

“조례 운용 못하고 사문화… 활성화 고민해야”
친일화가 그린 표준 영정 쓰인 화폐 교체 필요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친일잔재청산법 도입이 급선무다. 제도화만이 잔재청산을 앞당길 수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잔재들을 뿌리 뽑기 위해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제도화' 추진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 실장은 “친일잔재청산을 하는데 민족적 국민적 여론과 감정만 있을 뿐 정작 시행하기 위한 법률이나 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2019년부터 17개 광역지자체와 300개의 기초단체에서 조례를 만들면서 전국에 29개의 친일잔재청산과 관련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조례가 운용되지 못하고 사문화(死文化)되고 있어 조례의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문제연구소가 현재까지 친일파를 색출해오고 친일인명사전을 간행하거나 친일파의 국고환수 등에 앞장서 역할 해 왔다면 이젠 중앙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최근 친일화가 장우성의 후손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소송을 계기로 또다시 표준영정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방 실장은 친일 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의 지정해제는 물론 표준영정이 쓰인 화폐에 대해서도 교체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방학진 실장은 “친일 화가의 표준영정에는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복식이라던가 인물의 실제 모습이라던가 고증이 안 된 내용을 기반으로 그린 친일파의 표준영정은 위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화폐 역시 점진적으로 교체해 나가야 한다. 100원 주화의 이순신 영정이나 만원권의 세종대왕 영정 등 친일작가의 영정을 대신해 새로운 인물을 선정하고 기념비적 인물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제조하는 방식으로 친일잔재를 서서히 청산해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친일 화가들 과오 인정 했었어야”

친일화가, 해방 후 미술계에서 기득권 군림
구본웅·김기창 등 초보 수준 형편없는 그림

박영택 경기대 예술대학 서양화·미술경영학 교수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미술사적 의미만 있을 뿐, 초보 수준에 형편없는 그림.”

구본웅, 김기창, 김은호, 이상범, 장우성 이들은 한국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추대되는 동시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화가들이다.

이들의 미술사적 업적은 해방 이후에도 인정을 받고 미술계의 기득권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기존의 평판이나 평가는 달리 해석되고 있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등 서양의 사조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초창기였기 때문에 서양 유파를 흉내 내던 이들이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는 있다”며 “작품성만 놓고 봤을 때 청전 이상범을 제외하고 초보 수준의 형편없는 그림이다. 작품성이 있는 그림이라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경매에서 이들의 작품가 책정이 작품성을 간접적으로 반증한다. 동양화 붐이 일던 60~70년대 시기에는 이들의 그림이 고가에 매입되기도 했지만, 현재 옥션에선 구본웅, 김기창, 장우성, 김은호의 그림은 100만원 내외를 웃도는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 서양 유파를 완벽히 흡수해 낸 이중섭, 자신만의 것으로 매만져 독특한 화풍을 갖게 된 박수근, 나름의 추상적 미술 철학을 구축해 낸 김환기 등과 친일 화가들의 작품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가 친일 화가들과 차이를 보인 점은 작품성뿐만이 아니다. 시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박 교수는 “친일화가의 모든 작품이 친일 행적을 드러낸다고 보긴 어렵다. 전시 체제에 일제 강요 때문에 전쟁을 선동하는 프로파간다적 그림을 그렸다던가 김은호의 그림인 '금차봉납도'와 같이 천왕에 공납하는 그림을 그렸다던가 하는 부분이 친일 화가로 규정짓는 결정적 요인이다.

김환기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 회의를 갖고 낙향했다는 점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대나 홍익대 등 미술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며 미술계의 기득권으로 자리한 친일 화가들에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이들의 내면까진 알 순 없겠지만, 해방 이후 반성의 태도나 사죄의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지난 1983년 당시 '계간 미술'에 보도된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라는 기획보도에서 거론된 친일 화가들이 크게 반발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의 태도에서 사과나 반성의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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