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말로만 하루 24시간이었지. 우리가 실지로 쓴 시간은 하루 스무 시간밖에 더 됐나?” 늘 통금通禁에 쫓겨 끗발이 오를 만하면 아쉽게 일어서야 했던 노름꾼 심씨는 통금해제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 이문구 作 「산너머 남촌」 중에서.
그땐 그랬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시내 곳곳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특히 눈이 많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면 귀가는 전쟁통이나 다름없었다. 12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술꾼과 연인들은 숨어들 곳을 찾으려고 여념이 없다. 아예 술집 문을 잠그고 통금이 해제될 때까지 마시기도 했다. 만약에 이 시간에 나다니다 통금 위반으로 적발되면 구치소에 갇혔다가 즉결심판에 넘겨져 벌금을 내거나 구류처분을 받아야 했다.
통금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과 인천부터 적용되었다. 20일 후 ‘미군이 점령한 조선지역 내 인민에게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금지’라는 내용으로 포고령이 내려졌으며, 휴전 이후에도 치안유지 명목을 내세워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또다시 36년 4개월 동안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였다. 이 제도는 계엄법과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와 새치기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淳風순풍」은 제17장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썼다. 도덕경 제57장 淳風(순풍-꾸밈없는 풍속)에서 노자는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有爲(규제/준법)와 無爲에 의한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의 사상은 규제를 내세운 공자의 유가사상이나, 법령을 중시한 한비자의 법가사상과는 대비된다. 금기할 것이 많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 많다는 것으로 그만큼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러니 더욱 빈곤해진다. 그는 고요함(靜)을 내세웠다. 제16장에서 ‘마음을 공허하게 하고 고요함을 돈독하게 하라(致虛極 守靜篤)’고 했으며, 제45장에서는 ‘맑고 고요해야 천하가 바르게 된다(淸靜爲天下正)’고 하였다. 그만큼 무위정치를 강조한 것이다. 본문에서 取(취)는 ‘治’로 쓰였고, 彌(미)는 ‘더욱’이라는 뜻이며, 朝(조)는 왕조나 통치자를 뜻한다.
나라는 바르게 다스리고 군사는 기발한 전술로 치러야 하지만, 천하는 꾸미지 않고(無爲) 다스려야 한다.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천하에 꺼리고 피할 것이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위정자가 지략을 많이 쓰면 나라는 더욱 어둡고 혼란해지고, 사람들이 간교한 꾀를 많이 부리면 간사한 일들이 더욱 많아지고, 법령이 더욱 엄하게 되면 도적이 더욱 많아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화육하고, 내가 고요하기를 좋아하니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애써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소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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