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주안염전은 놀이터와 다름 없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염전 저수지에서 망둥어 낚시도 하고 수영도 즐겼다. 4·6·7구로 불리던 저수지는 바닷물을 가둔 뒤 수차를 이용해 소금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때론 곳곳의 창고로 소금을 나르려고 설치한 레일 위 '소금차'를 훔쳐 타고 즐거워했던 감회가 새롭다. 당시엔 현 동암역 부근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며 드넓은 염전을 형성했다. 비교적 수심이 얕았던 4구 저수지엔 여름마다 더위를 식히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바둑판 모양으로 펼쳐져 있던 너른 소금밭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주안염전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천일염전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7년 통감부에서 일본인 제출 보고서를 토대로 주안 간석지에 시험염전을 만든 뒤 1912년부터 대규모로 염전지대를 조성했다. 주안이 지형·지질·기후 등 천일염을 생산하는 데 골고루 여건을 갖춰서였다고 한다. 그 때부터 주안역 뒤 일대엔 염부를 비롯해 소금생산·관리 등을 맡은 이들을 위해 일본식 목조주택이 잇따라 들어서 1970년대까지 그 형태를 유지했다. 주안염전과 일대 풍경은 1960년대 후반 경인고속도로 개통과 공단 조성 전까지 지속됐다.
인천지역 천일염전은 1960년대만 해도 초·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그 수나 양에서 엄청났다. 흔히 타 지역 사람들이 인천인에 대해 "짠물"이라고 부르는 속칭도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인천인들이 인색해서가 아니라, 소금과의 연상작용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염전이 가장 많았던 곳은 지금의 주안 5·6공단 자리다. 여기에 남동·군자염전 등이 추가되면서 인천은 마치 '소금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인천이 전국 소금 생산량의 70% 가량을 차지했다니,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질 좋은 천일염을 수탈하려는 목적으로 수인선을 개통하기도 했다.
미추홀구가 이렇게 국내 첫 천일염전이 있던 주안5동에 염전골마을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미추홀구는 신축 공사 중인 주안5동 행정복지센터 1층에 전시공간·커뮤니티를 갖춘 마을박물관을 조성하고 오는 5월 개관할 예정이다. 이 공간엔 1907년 조성되기 시작한 주안염전과 주안산업단지 등의 역사를 전시한다. 마을박물관 프로그램 운영을 맡는 동네 주민들은 직접 전시 내용을 만들고 개관 일정에 맞춘 특별기획전도 추진한다.
주안5동이 갖고 있는 특수성에서 염전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역사를 운운하는 일은 과거를 잊지 말고 오늘에 되살리자는 뜻이리라. 시·공간에 대한 씨줄과 날줄이 엮일 때 비로소 동네 역사는 이뤄지지 않는가. 염전골박물관이 자리를 잡도록 시민들에게 응원을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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