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작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쟁 후 탈출하여 한국에 도착해서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는데 이 친구가 농담으로 “너는 전쟁을 경험한 유일한 동문이다” 해서 웃은 적이 있다. 한국전쟁이 1953년 휴전되었으니 전쟁을 겪은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인데 이분들 연세도 70이 넘으셨다. 필자는 전쟁을 경험했다기보다는 그곳에서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다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연초 키이브 우리 동네 폭격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여행경보 4단계 여행 금지 구역이라 예외적 여권 사용을 신청하여 한 달 씩 허가를 받아 거주 연장해 왔는데 이번 폭격으로 잠시 소나기 피하는 심정으로 다시 떠날 결심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그리던 땅이었건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도 2023년 1월 24일 2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기도 온라인 수업인데 매일 4~5시간씩 순환적으로 정전이라 줌(ZOOM)을 통한 인터넷 수업을 하기가 어렵고, 교수가 전기가 들어와서 수업해도 학생이 전기가 없으면 출석률이 떨어지는 곤경에 처해있다. (요즘은 핸드폰을 충전하여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루마니아로 재탈출을 생각하게 되었다.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유럽의 인접한 여러 나라를 갈 수 있지만 루마니아는 시차가 없고 지난번에 머물렀던 루마니아 중부지방 시골 마을에 메일을 보냈더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미리 연락하고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한국 음식과 양념을 넣었고, 옷 몇 벌과 약품, 책 몇 권 등 최소한으로 피난 용품을 챙겼다. 10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국경은 전쟁 초기같이 혼란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했다. 전쟁을 피해 나가는 사람보다 오히려 귀국하는 차량이 더 많아 보였다. 순서대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되어 루마니아로 넘어왔다.

국경을 넘으니 한없이 평화롭고 조용해서 부러웠다. 1월 가장 추운 달이지만 눈(雪)은 없고 푸른 잔디와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 예전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주변의 폴란드 루마니아 몰다비아 사람들을 약간 무시하고 하대했었다. 지금이야 전쟁으로 사정이 바뀌었지만 폴략키(폴란드인), 루만(루마니아인), 몰다반(몰다비아인)으로 불렀는데 약간 낮추어 부르는 의미가 있다.

루마니아 국경에서 중부지방 산속과 숲으로 4시간 이상 운전하여 바카레스티(Vacaresti) 시골 마을에 다시 도착했다. 옛 가요에 정들면 고향이라고 시골 마을 근처에 오니 마음이 놓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개들도 이 마을을 안다는 반응을 했다. 도착하니 주인 차나드와 그의 어머니가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동화 속 작은 집이 우리가 거처해야 할 숙소였는데 망명객의 심정으로 방으로 들어섰다.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겠고, 전쟁은 어찌 진행될지도 모르겠고, 우리의 운명은?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하고 많은 나라 중 하필 우크라이나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답답하고 한숨만 나왔다. 그리고 독주 몇 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날 국경을 넘으며 정지용 선생의 고향이라는 시가 사무치도록 가슴에서 흐느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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