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주택생활자클럽의 팟캐스트 '어쩌다 동인천'. /사진=한수희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서울로 출근하는 로컬 변두리 청춘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팬이라면 기억하는 대사일 것이다. 내향적 성격의 주인공 염미정은 '해방클럽'이란 사내 동호회를 만들어 답답한 현실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 그것부터가 막연한 일. 미정은 공책에 해방일지를 쓰며 갑갑함의 원인을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클럽 회원끼리 만나 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척하지 않는 삶이 클럽의 강령이고 조언도 위로도 하지 않는 것이 부칙이다.

드라마를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중년이 되어 호르몬에 지각변동이 생긴 탓도 있지만 내 지나온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1호선파로 통했다. 통학시간만 하루 4시간이 훌쩍 넘었다. 1호선파들은 늘 시간에 쫓겼다. 부천에 살던 친구와 집에 가기 위해 밤마다 자주 뛰었다. 변두리 인천에 산다는 것은 남들보다 보폭을 더 벌려야 하는 삶이고 가끔 찢어지는 인생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부망천'이라는 기묘한 세계관을 접했다. 망언임에도 무언가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말이었다. 세상은 서울 노른자와 변두리 흰자로 구분되어 있다. 게다가 '마계인천' 오명까지. 내 친구 중에도 '인천까지 밀려나 사는 건 그렇지 않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애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 탓할 수도 없는 게 이부망천의 세계관은 인천사람인 내 안에도 있었다. 성공적인 삶은 당연히 서울에 있는 거라 여겼으니까. 인천에서 활동해도 서울과 연결고리가 있는 척을 해야 했다.

동인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후 동네친구들과 '단독주택생활자 클럽' 모임을 만들었다. 해방되고 싶었다. 아파트 층간소음으로부터. 이부망천의 세계로부터. 나를 갑갑하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염미정처럼 해방일지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클럽 회원인 동네친구들과 함께 모여 '말'하기로 했다. 변두리에 살아도 괜찮다고. 로컬에도 행복한 삶이 있다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해야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어쩌다 동인천'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다.

/봉봉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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