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 할매 시인 박금분 할머니와 시 '가는 꿈'./사진=칠곡군 제공, 연합뉴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시인 박금분

경북 칠곡의 시인 박금분 여사가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87세에 한글을 배워 시를 쓰고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 주인공으로도 출연한 박금분 여사는 자신의 시와 같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영면에 들었다.

박 여사는 일제 강점기, 6·25 전쟁이라는 혹독한 시대 속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가난,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배움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고 2015년, 경북 칠곡군이 운영하는 약목면 복성리 배움학교에서 한글이 배울 수 있게 됐다.

박 여사는 알렉상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통째로 외우고 집안이 한글 공부한 종이로 가득할 만큼 열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학교에선 반장을 맡으며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함께 회식해 ‘친절한 할머니’라는 별명도 얻기도 했다.

2015년 칠곡군이 성인 문해 교육을 통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시 98편을 묶어 발행한 시집 '시가 뭐고'에선 죽음에 대한 성찰을 표현한 '가는 꿈'으로 독자들 가슴에 큰 울림을 남긴 바 있다.

2019년에는 김재환 감독의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 출연, "사는 게,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냐"면서 환히 웃던 모습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애정이 가득한 모습에 덩달아 관객들도 뭉클해졌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

-시인 박금분

글을 배우니 사는 게 재미있어졌다는 이 시인을 그 누가 청춘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제 영원히 우리 곁에 글로서 남게 된 이 시인은 평생 청춘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