ㅓ▲ 인천 부평역 인근에 걸린 이태원 참사 100일 집중추모 기간 현수막

 

100일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상적인 주말을 맞이하고 있던 이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159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는 어느새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고 원인은 알 수 없고 책임 규명은 지지부진하고요.

유가족들은 참사가 벌어진 뒤 24일이 지나서야 처음 카메라 앞에 서 함께 목소리를 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려간 그들의 요구사항은 지극히 상식적이었기에 더 먹먹함을 자아냈습니다.

① 진정한 사과

② 성역 없이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

③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과 책임 규명

④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⑤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⑥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그러나 그 후로 무엇 하나 이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고, 잊을 수도 없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시민분향소 앞, 100일 집중추모 기간 2일 차 그들은 또다시 마이크를 움켜쥐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2022년 11월 22일에 한 첫 번째 기자회견 이후 두 달이 넘게 시간은 흘렀지만 요구사항은 전과 같았습니다.

▲ 인천 부평역 인근에 걸린 이태원 참사 100일 집중추모 기간 현수막

 

우린 10월 29일에 멈춰 있어서 사실 100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참사가 잊히게 될 것 같고 진상규명도 물 건너갈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아이들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내 새끼가 과거형이 된 게 말하기가 너무 힘드니까요.

그런데 유가족분들이랑은 같이 웃으며 현재형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모이게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10.29 유가족들,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인터뷰 중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고 싶다는 유가족 측 의사에 안전상의 이유로 불허를, 시민 추모 대회 신청 역시 일정 조율이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일 경찰은 기동대 10개 중대를 투입했고, 서울시도 광장 내 세종로 공원에 천막을 설치했습니다.

추모 행사 당일인 4일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에 분향소 설치를 강행하자 경찰 측이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서울시도 직원들을 통해 철거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때 분향소를 지키려는 유가족과 시청 직원, 그리고 경찰이 뒤엉키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고, 인파 속 유가족 한 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죠.

▲ 4일 오후 SNS 트위터에 올라온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 관련 글 캡처

이태원 참사처럼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이나 죽음과 관련해 끔찍한 장면에 대한 노출이 발생했을 경우 사별로 인한 유가족의 충격은 더욱 강렬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가족이 ‘상실’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고통의 수준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에 애도 과정에서 유가족이 고인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는 학계 연구 결과도 있고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이해하기 등의 애도 과정은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사별 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고통을 감소시키고, 심리적 재건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기에 그 장면을 함께 본 우리는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들과 또 우리를 위해서.

▲ 4일 SNS 트위터에 올라온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 관련 글 캡처

 

"아직 내 가족이 떠난 이유를 모릅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태원 참사를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10만여 명의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모일 것으로 예상했는데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소방당국이 적절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고 판단했습니다.

참사 발생 직전 112나 119로 인명피해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수차례 접수됐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하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도 봤고요.

특수본은 재난을 예방·수습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이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아 참사를 초래한 것은 물론이며 사고 직후에도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게을리했다고 지난달 13일 공무원 등 23명을 검찰에 송치, 1차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 인사들을 단 한 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함으로써 유족과 여론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에서 피의자를 차례로 넘겨받으면서 별도의 수사팀을 꾸리고 전문 검사를 투입해 사실상 원점에서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대대적 보강수사에 나설 것을 예고했습니다.

특히, 검찰은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이 장관과 윤 청장의 수사기록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태원 참사=이상민 장관?…유족 위로·국민 안전대책은 어디에

국가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국가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우리의 종복이 되어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는 곧 이상민 장관의 거취 문제,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 촉구로 귀결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는 여당인 국민의힘 퇴장 후 야당 단독 표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해당 보고서에는 윤 대통령에겐 이상민 장관의 즉각적인 파면과 참사 책임자에 대한 인사 조처,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 각 기관에는 이번 참사에 대한 면밀한 감사를 통해 관련자 징계 절차에 착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경비 인력의 비효율적 배치와 참사 당일 마약범죄 단속 계획 등도 안전관리 부실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정부의 책임론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죠.

이 보고서는 여당인 국민의힘 퇴장 후 야당의 단독 표결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159명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참사 발생 ‘100일 만에 최초로’ 국가기관에 의한 공적 추모제를 개최하고자 한다"는 예고대로 5일 오전 여야 지도부, 유가족과 생존자, 이태원 상인이 함께한 국회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종교계의 추모 의례에 이어 김진표 국회의장과 각 당 지도부는 한목소리로 다신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 역할’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서울시가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저희가 치울 테니 합동 분향소 좀 만들어주십시오.

-5일 오전 국회 추모제에 참석한 10.29 유가족들

 

이에 김 의장을 비롯한 여야 지도부는 "이번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무엇보다 희생자 추모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피해자 지원도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힘쓸 것"을 약속했고요.

부디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랍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죽은 사람들을 동정하기가 더 쉽지만

그 전에 동정했다면

구원받았을 것이다ㅡ

비극을 공연하면

당연히 박수를 받지만

공연 중인 비극은

그럴 일이 좀처럼 없다.

-에밀리 디킨슨.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2019)

 

*참고문헌

전지열, 신지영, 최준섭, 김정한, 이동훈. 세월호 재난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애도 과정에 대한 근거이론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019)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