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현 동상. /사진=연창호

어제는 2월 2일, 우현 고유섭 선생이 인천 용동에서 태어난 날이다. 나는 직업이 학예사라서 우현 선생의 동상(좌상)을 늘 지나다니고 있다. 주차장에서 인천시립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우현 선생의 좌상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오늘도 도자기를 들고 앉아 열심히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다. 선생은 무엇을 위해 40년 인생을 사셨을까?

우현 고유섭이란 이름은 다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교과서에 그의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현은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한국인의 미의식은 기교가 없는 자연스러운 미의 세계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많은 한국 미술사의 저서들은 책상에서의 공부만이 아니라 전국의 고적을 두루 답사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는 개성박물관장으로 재직하다 40세의 나이로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우현 선생은 한국 미술사학의 개척자로 많은 미술사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이 석남 이경성과의 인연이다.

석남 이경성의 고백에 의하면 우현 고유섭 선생을 통해 미술사 연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석남은 일본 유학 시절 용기를 내어 고향 선배인 우현 선생에게 미술사 공부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우현으로부터 힘찬 격려의 답장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둘은 평생토록 만난 적은 없지만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게 된다. 석남 역시 한국인의 미의식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애썼고 새로이 미술평론 분야를 개척했다.

그 둘은 서해를 끼고 개성과 인천에서 각각 10년간 박물관장으로 일을 한 한국 박물관의 개척자들이었다. 우현이 못다 이룬 꿈은 석남에게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석남 역시 생일이 2월이다. 그 두 분은 14년의 나이 차이는 있으나 죽은 이후에야 한 장소에서 마주 보고 행복하게 서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작은 동상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말이다. 참으로 인생에는 인연이 있는가 보다. 그것도 평생 만나 본 적이 없는 분들이 한 자리에 서 있으니 말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가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간절함이다. 자기가 걸어갈 길을 정하고 간절하게 정성을 다해 묵묵히 걸어가는 자가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간절한 마음에서 몰입이 일어나고 몰입에서 창조가 일어난다. 간절함은 두려움을 이긴다. 자기를 한계 지우는 것은 자기이고 그것을 이기는 길은 간절함이다. 간절함은 놀라운 투지와 용기를 준다. 협력할 자를 구하는 담대함이 생긴다. 두 분은 일제가 주입하는 식민 미술사가 아닌 우리의 주체적인 미술사를 세우고자 평생을 바친 분들이다.

두 분의 삶을 살펴보니 삶이야말로 예술임을 알게 된다. 죽어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게 예술가의 길이다. 역경과 시련이 없는 삶은 없다. 삶의 고난 속에서 진주가 조금씩 자라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고난에 주저앉지 말고 운명과 싸워야 한다.

선생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것에 머무르면 안 된다. 그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 실천해야 한다. 누구도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삶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2월은 우현과 석남이 태어난 달이다. 오늘 꽃송이 두 개를 마련하련다. 박물관 우현마당으로 가서 도자기를 든 우현선생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실내에 들어가 여유와 멋이 있던 석남 선생에게 나머지 한 송이를 고이 바쳐야겠다.

▲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사.
▲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사.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사



관련기사
[문화산책] 토끼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 이유 올해는 토끼해이다. 토기는 귀가 밝을 뿐만이 아니라 눈 또한 밝다. 지혜와 명철의 동물이 토끼이다. 전통시대 일상생활에서 개와 더불어 가장 친근한 동물은 아마 토끼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토끼와 관련된 민담, 설화 등이 많이 전해져 온다. 민담 속의 토끼는 별주부전에서 보듯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꾀돌이의 이미지이고, 민속에서의 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 송암미술관에서는 몇 년간 민화에 대한 기획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한국인들이 달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달 속에서 방아 찧는 토끼의 모습 아닐까 한다.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