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치솟던 전세가, 고금리에 자유 낙하

지난달 아파트 단지 계약 2년 전 비교
같은 평형대 가격 하락 '역전세' 87.5%

이자 부담 늘자 세입자 월세 선호 뚜렷
인천, 2년째 '역대급' 4만여 가구 공급
자금 조달 문제로 입주 지연 가능성도
▲ 인천 연수구 동춘동 청량산에서 바라본 송도국제도시와 2021년 1월~2022년 10월 월별 인천 아파트 중위 전세 가격./인천일보DB

외국 임대차시장에선 보기 힘든 한국식 전세의 핵심은 계약 만료 때 보증금을 그대로 세입자에게 돌려준다는 데 있다. 집주인은 이자를 내지 않고 돈을 융통하고 세입자는 월세를 내지 않고 주택에 살 수 있어 양쪽 모두에 ‘나이스’한 거래로 평가됐다. 특히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더 크고,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면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채워나갔다. 전세 계약은 거의 2년 단위. 계약이 끝난 기존 세입자와 셈을 마무리하려면 다음 세입자에게 넘겨받는 보증금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 세입자와의 새로운 계약에서 설정한 전세 보증금이 직전 계약 때보다 낮으면 여기서부터 위험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인천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2020년 3월 ㎡당 296.7만원에서 2021년 12월 385.2만원까지 치솟았다. 32평쯤 되는 105㎡ 아파트 전세가가 3년 전쯤엔 3억1154만원 정도였는데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4억446만원으로 1억원 이상 급등했다는 뜻이다. 집값 상승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가격을 높인 전세가는 작년부터 집값 하락 속도보다 빠르게 내려앉아 지난 10월 기준 ㎡당 336.4만원까지 떨어졌다.

 

▲ 인천 송도국제도시 역전세 거래 현황 및 28개 역전세 단지 보증금 감소세 현황(2021년 1월·2023년 1월 비교)./자료제공·제작=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반전세 제외·이연선 기자

▲87% 단지에서 '역전세' 확인. “세입자 전화가 무섭다.”

2021년은 그야말로 인천 아파트 전세가가 눈덩이처럼 불기 시작한 해다. 시작점이던 그해 1월(1월1일~1월25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선 모두 348건의 아파트 전세 거래(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반전세 제외)가 이뤄졌다. 이 거래들을 계약이 만료될 즈음인 지난달 송도 아파트 전세 거래 261건과 비교해 봤다.

2023년 1월 총 55개 아파트 단지 전세 계약에서, 거래량이 많아 평균 전세 가격을 구할 수 있는 평형대를 2021년 1월 총 60개 아파트 단지 전세 계약과 따져봤더니 32개 단지에서 같은 평형대 거래가 확인됐다.

그 결과,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32개 단지 중 28개 단지가 2년 전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되고 있었다. 직전 계약보다 보증금이 낮아진 전세 거래를 말하는 '역전세'가 무려 87.5% 단지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전세 가격이 1억∼2억원 떨어진 경우도 속출했다.

송도국제도시 A 아파트를 소유한 김모(56)씨는 당장 오는 4월 전세 계약 만료 때문에 걱정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5억원 이상 거래되던 전세 거래가 지난달 2억원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김씨는 “은행 대출 금리가 요즘 이렇게 높은데 내가 세입자라도 2년 전 시세로 계약 연장 안 할 거 같다. 우리 아파트 전세 시세가 이렇게 곤두박질이니까 계약 연장 때 몇천만원 깎는 선에서 끝날 리 없다”며 “아파트 전세 보증금은 현재 근처 아파트 매입 때 활용했다. 솔직히 전세금 받아서 세월 좋게 통장에 넣어 놓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다들 아는 거처럼 송도 아파트 매매가가 엄청나게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 처분해 A 아파트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적금을 깨든 대출을 받든 해야 한다”고 전했다.

세입자들은 최근 고금리 변동금리 전세 대출로 이자만 수백만원씩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라 전세금 깎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송도국제도시 B 아파트 전세 거주자 정현수(43)씨는 “학부모라면 어찌 됐든 송도에 남고 싶어 한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현재 아파트에 사는 게 제일 좋은데 2년 전 맺었던 5억원에 가까운 전세 계약으로 매달 은행 이자만 150만원씩이다. 새해 B 아파트 전세가가 3억원 초반까지 내려왔으니까 5000만원에서 7000만원 정도라도 돌려받을 생각이다. 이 돈만 챙겨도 한 달에 은행 이자 몇십만원은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관계. 이제 본격 시작?

위에 설명처럼 2021년에 인천지역 아파트 전세가가 폭등했다. 그중에서도 전세 시세가 가장 저점이었던 게 그해 1월이고 반대로 가장 고점을 찍었던 건 같은 해 12월이다. 그러니까 2021년 1월과 그로부터 딱 2년 뒤인 2023년 1월 전세 거래에서 87% 역전세를 나타내는 지금의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B 아파트 경우 전용 면적 84㎡ 실거래 전세가 평균이 지난 2021년 1월엔 4억9000만원이었는데 같은 해 12월엔 5억3000만원으로 더 올랐다. 지난달 기준 B 아파트 같은 면적 전세가 평균은 3억4000만원대다.

송도지역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출 금리가 하여튼 문제다. 높은 이자 피하려고 세입자들이 전세보다 월세 선호하면서 전세 매물은 늘고 기존 보증금 토해낼 수 없는 집주인들은 골머리만 앓고 있다”며 “계속 전세 시세가 내려간다면 나중엔 갱신계약 위해 기존 세입자의 전세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거나 대출까지 받아 돈을 돌려주는 일이 늘어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공급 물량 넘치는 인천. 역전세 문제 이대로 둬도 되나

올해 전국에선 아파트 35만20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경기와 인천, 대구를 중심으로 입주 단지가 집중돼 조사 이래 최다 물량을 기록할 전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인천에는 2년 연속 4만 가구 이상이 쏟아진다. 2022년 4만2515가구, 2023년 4만4984가구 등이다. 2023년에는 2000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다 물량이 공급될 예정이다.

구도심 정비사업 아파트와 검단신도시 입주가 한꺼번에 몰리면서다. 부동산R114 측은 해당 자료에서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하거나 전세 세입자를 못 구하는 등 자금 조달 문제로 입주가 늦어지는 사태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2023년 인천 아파트 공급 물량은 국내에서 경기(10만9090가구)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