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집 '1928년생'…기관별 제각각
전남 완도 출신, 인천으로 기록 오류
2014년 8월 작고…현직 화가 표기
사후 다시금 인천이 주목하고 있는 청파 황병식(黃秉植) 화백에 대한 기본 정보가 뒤죽박죽이다. 태어난 해는 자료마다 어긋나고, 심지어 행정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조차 믿을 수 없다.
인천시는 시가 주최하는 '고서숙 컬렉션-황병식 회고전'을 지난해부터 오픈런(폐막 일자가 정해지지 않은)으로 옛 제물포구락부와 인천시민애(愛)집에서 전시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시는 “'고서숙 컬렉션-황병식 회고전'은 인천을 사랑했던 작가 황병식의 작품과 인천 출신 주요 컬렉터인 고서숙의 예술적 안목을 동시에 조명하는 전시”라는 의미를 나타냈다.
전시는 공간의 한계 등으로 원화 훼손 우려가 커 디지털 복사본으로 이뤄졌다.
시가 연 공신력 큰 전시회지만 '황 화백'의 일대기는 그렇지 않다. 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에 따르면 황 화백은 인천 출신으로, 현직 화가이다. 태어난 때는 1928년 11월1일이다. 재단은 황 화백의 작품으로 '청해의 여명'과 '서해도원', '소래포구의 휴일' 등이 있다고 전했고, 1983∼1985년 인천시미협 지부장을 끝으로 이력이 없다. 재단이 언급한 그의 작품 중에는 '소재포구 대춘'이란 제목이 있다. '소재포구'는 '소래포구' 오기 같다.
하지만 황 화백이 태어난 곳과 일시는 혼란을 일으킨다.
황 화백은 일본 교토시 관서일불(關西日佛)학관에서 스승 이가끼가헤이(井垣嘉平) 선생을 만났고, 1946년 귀환 후 55년 평택고에 이어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4년 전업작가가 돼 서울 개인전에 이어 프랑스, 일본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자료가 대동소이하다.
반면 황 화백 출생연도는 1926년, 1927년, 1928년 등 다양하다.
재단은 1928년이라고 못 박았지만, 미술 관련 각종 서적과 잡지, 신문 등에서는 황 화백의 출생연도를 1926년으로 했다. 1927년으로 출생연도를 밝힌 자료 또한 인터넷 등을 떠돈다. 서울에서 작성된 화가인명사전에도 황 화백은 1928년에 태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황 화백 고향은 재단이 확실히 틀렸다.
황 화백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1970년 이후 인천에서 활동했다. 그는 1990년대 고향 완도에서 마지막 작품 활동을 벌이다 2014년 8월19일 작고한다.
2010년 8월호 '서울아트코리아'는 표지작가로 황 화백을 소개하며 “소위 인기작가 그룹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화단내의 일부 작가들에 비하면 그는 연령을 초월한 집념과 정열, 그리고 성실한 삶을 살아온 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지역 A원로는 “관에서조차 지역 미술계의 큰 어른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인천 예술계의 한계”라고 비판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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