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 황병식 화백 회고전

누리집 '1928년생'…기관별 제각각
전남 완도 출신, 인천으로 기록 오류
2014년 8월 작고…현직 화가 표기
▲ 황병식 화가 작품

사후 다시금 인천이 주목하고 있는 청파 황병식(黃秉植) 화백에 대한 기본 정보가 뒤죽박죽이다. 태어난 해는 자료마다 어긋나고, 심지어 행정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조차 믿을 수 없다.

인천시는 시가 주최하는 '고서숙 컬렉션-황병식 회고전'을 지난해부터 오픈런(폐막 일자가 정해지지 않은)으로 옛 제물포구락부와 인천시민애(愛)집에서 전시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시는 “'고서숙 컬렉션-황병식 회고전'은 인천을 사랑했던 작가 황병식의 작품과 인천 출신 주요 컬렉터인 고서숙의 예술적 안목을 동시에 조명하는 전시”라는 의미를 나타냈다.

전시는 공간의 한계 등으로 원화 훼손 우려가 커 디지털 복사본으로 이뤄졌다.

▲ 인천문화재단 누리집 황병식 화가 정보
▲ 인천문화재단 누리집 황병식 화가 정보./사진출처=인천문화재단 누리집 갈무리

시가 연 공신력 큰 전시회지만 '황 화백'의 일대기는 그렇지 않다. 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에 따르면 황 화백은 인천 출신으로, 현직 화가이다. 태어난 때는 1928년 11월1일이다. 재단은 황 화백의 작품으로 '청해의 여명'과 '서해도원', '소래포구의 휴일' 등이 있다고 전했고, 1983∼1985년 인천시미협 지부장을 끝으로 이력이 없다. 재단이 언급한 그의 작품 중에는 '소재포구 대춘'이란 제목이 있다. '소재포구'는 '소래포구' 오기 같다.

하지만 황 화백이 태어난 곳과 일시는 혼란을 일으킨다.

황 화백은 일본 교토시 관서일불(關西日佛)학관에서 스승 이가끼가헤이(井垣嘉平) 선생을 만났고, 1946년 귀환 후 55년 평택고에 이어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4년 전업작가가 돼 서울 개인전에 이어 프랑스, 일본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자료가 대동소이하다.

반면 황 화백 출생연도는 1926년, 1927년, 1928년 등 다양하다.

재단은 1928년이라고 못 박았지만, 미술 관련 각종 서적과 잡지, 신문 등에서는 황 화백의 출생연도를 1926년으로 했다. 1927년으로 출생연도를 밝힌 자료 또한 인터넷 등을 떠돈다. 서울에서 작성된 화가인명사전에도 황 화백은 1928년에 태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황 화백 고향은 재단이 확실히 틀렸다.

황 화백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1970년 이후 인천에서 활동했다. 그는 1990년대 고향 완도에서 마지막 작품 활동을 벌이다 2014년 8월19일 작고한다.

2010년 8월호 '서울아트코리아'는 표지작가로 황 화백을 소개하며 “소위 인기작가 그룹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화단내의 일부 작가들에 비하면 그는 연령을 초월한 집념과 정열, 그리고 성실한 삶을 살아온 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지역 A원로는 “관에서조차 지역 미술계의 큰 어른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인천 예술계의 한계”라고 비판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