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초빙교수
▲ 이재현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초빙교수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유엔(UN) 환경전담기구인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 파견차 케냐에 머물 당시,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5895m) 무산소 등정에 나섰다. 킬리만자로는 현지인들이 '신령의 산'이라며 신성시하는 곳이자, 전 세계 산 마니아들이라면 꼭 한번 가 보길 꿈꾸는 곳이다. 나 역시 밀림부터 만년설이 쌓인 정상까지의 다채로운 모습, 여러 고산 식물과 야생화, 신비로운 밤하늘 별의 로망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달랐다. 이유 모를 폭우에 동료들이 얼어 죽었다는 현지 가이드들의 얘기와 곳곳에 보이는 시커멓게 탄 산불 흔적들, 물 부족으로 힘들어하다 결국 원주민이 떠나고 있다는 산 아랫마을 소식까지. 감상적인 나의 산행은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급기야는 정상에 오르기까지 풀 한 포기 없는 황야만 실컷 본 데다 정상에서도 결국 눈 한번 밟지 못했다.

꼬박 엿새 동안 오른 킬리만자로 정상은 내가 직접 목격한 첫 기후변화의 현장이었다. 이 밖에도 우기엔 비가 마르고 건기엔 산불과 폭우가 쏟아지는 이상징후, 물과 먹이와 초지 그리고 일을 찾아 고향을 등지는 기후난민의 현장은 수십 년을 환경에 몸담아온 내가 그간의 환경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후변화에 눈을 돌리게 했다.

한국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3년간의 유엔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기후변화 업무를 맡게 되면서 여러 사례 중 제주 용머리해안을 직접 방문했는데, 기상청 기록을 보니 지난 40여년간 해수면이 무려 22㎝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얘기로는 물이 빠질 때 드러난 바위에서 해물을 파는 시간과 장소가 반이나 줄었단다. 해안 탐방로가 잠긴 기간도 길어졌다. 이뿐 아니라 감귤이 육지에서 생산되다 보니 경쟁력을 잃어 망고 등 열대과일을 재배한다고 한다. 많은 조사결과에서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보다 한반도의 평균온도 상승이 훨씬 빠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 속에 부랴부랴 전 세계 전문가가 참여해서 연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에서는 산업화 이전과 대비해 지난 100년간 이미 지구 온도가 1℃(0.8~1.2℃)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겨우 1도에 불과하지만 이미 전 세계에서는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상승속도가 빨라져 10년마다 0.2℃씩 상승하고, 앞으로 4℃까지 가파르게 오르면 지구에 재앙 수준의 피해가 올 것이라고 한다. 이후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에서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기후변화를 1.5℃ 이하로 줄이자는 내용이 공식화됐다. 이미 1℃ 올랐으니 앞으로 0.5℃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정도 줄여야 하며,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0(제로)으로 만들자는 내용이다. 2010년 배출량과 그 후 늘어나는 배출량 총량을 어떻게든 줄이고 안되면 흡수 또는 저장시켜서라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 '넷 제로(Net Zero)' 또는 '탄소중립'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지금 우리의 노력으로 과연 가능할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바로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로 묶기 위한 최대수단이다. 기존의 국지적 환경문제 해결에서 지구 전체를 휘감는 환경문제인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수단(E·환경)이자, 개인-국가-기업 각각의 개별적 이익이 아닌 지구 구성원 모두가 운명을 걸고 해결해야 할 통합적인 문제(S·사회)인 동시에 생산자인 배출자뿐 아니라 고객인 소비자들이 함께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G·지배구조)인 것이다. ESG로 하나 되고 변화되는 세상을 통해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다시금 눈이 쌓이고, 제주 용머리해안의 해수면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길 기대해 본다.

/이재현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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