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로구이 집 핸드드립. 이 무슨 조화인가.

나만의 짬뽕집이 없는 중년은 슬프다. 나이 들어 단골집이 없는 이도 마찬가지다. 누굴 만나도 갈 데가 없고 어지간한 일에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다. 식당에 무관심하니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다. 취향이 없다 보니 엉뚱한 데서 자존심을 세우다 구박만 받기 일쑤다.

반면 단골집이 많은 이도 문제다. 맛에 대한 '혜자'거나 팔랑귀일 확률이 높다. 여기도 괜찮고 저기도 맛있고 찾아야 할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 벌이에 비해 엥겔지수가 너무 높다. 그러다 발길이 뜸해지면 사장님과 서먹해져 관계가 애매해진다. 내가 그렇다.

새로 사귄 동네 친구들과 연초 미식 모임을 가졌다. 일명 동인천미식회. 동인천 근방에 사는 이들이 함께 동네 맛집을 탐방하는 모임이다. 송현동, 금창동, 인현동, 내동, 경동. 송월동, 신포동. 이 오래된 동네엔 사람을 포동포동 살찌우는 가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신생이건 노포건 맛과 인테리어에 개성이 있다. 원도심에 살아 좋은 이유 중 하나다. 지척에 좋아하는 이가 살고 있다는 것. 살며시 그의 창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 동네를 살아가는 데 그런 두근거림이 있다는 얘기다.

첫 모임으로 홍예문 올라가는 길에 있는 숯불구이 집을 찾았다. 평범한 고깃집으로 보였으나 그게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마법이 펼쳐진다. 시의적절한 서빙과 호텔급 매너를 보여주시던 사장님이 바리스타로 변신한다. 화로구이 테이블에 커피세트가 펼쳐지고 사려 깊은 핸드드립과 애드립이 이어진다.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제대로다. 오! 맛도 일품. 사장님 표정을 보니 고기 구울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행복하다.

이유를 여쭤보니 커피가 좋아서란다. 그러고 보니 벽에 바리스타 자격증이 보인다. 커피를 사랑하는 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손님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사랑이다. 못 말릴 애틋함이다. 다만 주방에 계신 사모님 눈치가 보인다. 한적할 때만 커피 서비스를 한다. 사장님은 행복하고 덕분에 손님은 황홀하다. 새해에도 나의 단골집은 늘어만 간다. 사장님도 손님도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봉봉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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