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첫 발자국-박남준
새의 노래를 듣기 위해 새장을 사지 않고
주머니를 꺼내 모이 그릇에 채워놓지 않고
한 그루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향기로운 그늘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
꽃을 꺾어 창가에 놓지 않고
꽃씨를 뿌리며 그 꽃씨가 퍼져나가
세상을 물들이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제 몸의 온기를 나누어
쫓기고 지친 마음을 껴안을 수 있다면
한 뼘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우주의 시간이 빛날 것이다
새해 첫 마음 한 발, 첫 발자국,
내 안의 바로 너
나 또한 세간의 문을 열고 그 길에 한 걸음
내딛는 시작이기를
▲ 새해 첫날, '한 발, 첫 발자국'을 떼는 날이다. '꽃씨'를 사 본 적이 언제일까? 꽃씨를 사서 땅에 심는 이만이 만개한 꽃향을 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나는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 꽃씨를 뿌리며 제 몸의 온기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내 안의 너'라는 기원적 바람으로 나는 새해 아침 탄생한다.
계묘년, 즉 올해는 검은 토끼해이다. 토끼는 다산하기 때문에 풍요의 상징이며 남녀 간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다. 토끼는 일 년에 네댓 번의 번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손이 귀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축복의 동물인 듯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인구절벽, 인구감소라는 우울한 전망이 이슈가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결혼하지 않는 시대,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시대, 이런 극개인화 현상을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낼 최적의 해는 바로 이번 토끼해가 아닐까?
'교토삼굴(狡免三窟)'이란 말이 있다. 지혜로운 토끼가 굴을 미리 세 개 파놓고 재난에 대비한다는 말이다. 일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지구촌의 전쟁, 삼 년이 지나도 물러갈 생각이 없는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오 년이 지나도 우리 곁은 맴도는 우울한 불경기, 이런 만성 지병들이 이번 계묘년에는 토끼의 지혜로움으로 개운하게 해결되어, 웃음이 넘치는 대한민국, 더 나아가 더불어 함께 온기를 나누는 지구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래 전부터 불러왔으나, 오래 잊고 살던 노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은 처연하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하다.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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