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열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30주년 기념낭독회 및 '침묵과 사랑' 출판기념회 당시 소설가 조세희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

25일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세희 씨가 향년 80세로 지병으로 별세했다.

조 작가 아들인 조중협 도서출판 이성과힘 대표는 "조세희 작가가 지병으로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조 작가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돼 등단했으나 10년 동안 소설 작품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칼날'이란 작품을 통해 다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인은 '뫼비우스의 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등 단편 12편을 묶은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조 작가의 대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네 가족을 통해 산업화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도시 하층민의 삶을 처절하게 그렸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1970년대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 판자촌에서 쫓겨나게 된 난장이 가족의 절망적인 현실은 우리 사회 불평등과 계급 갈등과 같은 병리적 세태에 대해 고찰하게 했다.

조 작가는 2002년 이 작품에 대해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들과 식사를 하는 동안 철거반들이 대문과 시멘트 담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싸우다 돌아오면서 한동안 포기했던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며 "유신정권의 피 말리는 억압 독재가 없었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 소설은 2000년대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기도 했고, 올해 7월까지 320쇄를 돌파한 이 책의 누적 발행 부수는 약 148만 부에 이른다.

2000년 '작가의 말'에서 조 작가는 "나의 이 '난장이 연작'은 발간 뒤 몇 번의 위기를 맞았었지만 내가 처음 다짐했던 대로 '죽지 않고' 살아 독자들에게 전해졌다"고 쓴 바 있다.

당시 글에서 그는 "이 작품은 그동안 이어져 온 독자들에 의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점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전했다.

고인의 다른 작품으로는 '시간여행', '침묵의 뿌리', '하얀 저고리'(미출간) 등이 있다.

1980년대 초 신문과 월간지에 연재했다가 중단했던 '하얀 저고리'는 민주화의 역사를 다룬 소설로 고인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못다 한 말을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조 작가는 생전 "1980년대 사회에 대한 절규를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 작가는 1979년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1997년 인문사회 비평잡지 '당대비평'을 창간했다.

조세희 작가의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지며 발인은 28일이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