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매료…유년기 한자·그림 몰두
모친, 10여년 전 작가의 길로 인도
안양시민축제서 놀라운 실력 발휘
장학금 수혜 장애학생 격려하기도
▲ 백종하 작가.

코로나19란 긴터널을 뚫고 지난 9월 다시 열린 안양시민축제 캐리커처 부스에는 특별한 작가를 만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행사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 주인공은 뜻밖에도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백종하(34·사진) 작가.

그의 어머니 박현숙씨를 통해 캐리커처를 수단으로 세상과 당당히 소통하는 백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폐성 장애는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으며 제한적이고 반복된 행동을 동반하는 발달장애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펜드로잉 놀이가 백 작가의 고기능 성향과 만나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쓱쓱 그려내는 재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심한 자폐 성향으로 어느 한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던 여섯 살 그를 사로잡은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어린이 한자공부 벽보였다.

박씨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한자를 손으로 짚으며 '(이게) 뭐야'라고 묻는 모습이 종하의 첫 자발적 언어에 대한 기억”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린 백 작가는 한자를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한자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나 인물, 특히 삼국지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 무렵 알아낸 또 하나의 사실은 백 작가가 '선'에 매료돼 있다는 점이다.

박씨는 “그때부터 모든 사물이나 대상을 면보다는 선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에 능숙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하루종일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한자 쓰기와 역사 만화 속 인물 그리기가 일쑤였다”고 백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월이 흘러 박씨는 10여년 전부터 아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즉석에서 그리는 캐리커처를 시켜보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이 지금의 백 작가를 만들었다.

안양시민축제에서 선보인 백 작가의 '5분 캐리커처'는 얼굴을 두 번 정도 쓰윽 보고 자신의 느낌대로 그려내는 작업인데, 실제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백 작가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하고 그를 장애인을 넘어 아티스트로 인정해주는 것을 볼 때마다 행복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박씨.

백 작가는 올해만 2번의 공모전 수상을 했고, '인천아시아아트쇼 2022' 등 다양한 전시회에도 초대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방 안 책상에서 만화 속 인물을 그리는 대신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종하와 마주 앉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줄 장애인 작가에게 수줍은 미소를 띨 때, 울컥할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분명 백 작가의 눈에는 사람들이 모두 친근하게 보이고, 세상이라는 곳이 조금씩 어렵지 않게 느껴져 더 큰 용기를 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앞서 안양시 인재육성재단은 지난해 9월 백 작가를 '수호천사 1호 인재'로 선정하고 장학생 선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재단은 지난 2일 백 작가의 사례를 롤모델로 삼아 꿈을 갖고 노력하는 장애학생 20명에게 '1% 천사기부단'의 모금액을 재원으로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백 작가와 어머니 박씨를 비롯해 최대호 안양시장, 천기철 재단 대표, 수리·관악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 학부모, 교사 등이 참석해 서로를 뜨겁게 격려했다.

박씨는 “백 작가의 후배들과 그 가족에게 칭찬과 응원을 보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백 작가의 활동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그 응원이 헛되지 않도록 백 작가의 활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기쁘게 달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안양=노성우 기자 sungco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