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하게 데운 돌이란 뜻의 온돌은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이다. 우리 역사 속 주거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방바닥에 돌을 깔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데우는 구조다. 뜨거운 열을 바로 전달하는 아랫목 돌은 두껍게, 열을 느즈막히 연결하는 윗목 돌은 얇게 놓는다. 온돌은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먼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그 열기가 방 바닥에 깔아놓은 구들장으로 전해진다. 열의 전도 원리이다. 데워진 구들장에서 나온 열기는 방 전체에 퍼진다. 열의 복사 현상이다. 방을 훈훈하게 만드는 온돌은 꾸준히 개량돼 왔다. 최근엔 온돌 대신 온수 파이프를 묻어 바닥을 덥히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온돌을 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돌은 우리말로 '구들'이라고 한다. 구들은 '구운 돌'의 약자이다. 그러니까 구운 돌로 바닥을 데우는 방법이다. 손발을 따뜻하게 하고, 머리를 차갑게 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 온돌은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온돌은 경제적 난방 방식이다. 열량을 구들에 쌓아놓고 오랫동안 열을 내게 할 수 있다. 온돌은 방을 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도 긴요하게 쓰인다.
고려시대 온돌 건물터가 강화도에서 발견돼 관심을 모은다. 국립문화재연구원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최근 고려 강도(江都·전시수도) 시기의 사찰 유적인 '강화 묘지사(妙智寺) 터'에서 온돌을 사용한 건물터를 확인했다. 고려가 몽골 침략에 맞서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를 강도로 일컫는다.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묘지사는 1264년(원종 5년) 임금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 머물던 사찰이었다. 지난 9월부터 조사를 진행한 강화문화재연구소는 문헌상으로만 알려진 묘지사 터에서 온돌 존재를 밝히는 쾌거를 이뤘다.
건물터는 너비 16.5m, 길이 6.3m 규모로, 구들장 길이는 70~120㎝에 이른다. 현재까지 발견된 다른 온돌 시설물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기록에 따르면 방 전체에 구들을 설치한 전면 온돌방은 고려 후기부터 등장했다고 한다. 그에 앞선 시기에 이미 구조를 명확히 한 대형 온돌 건물터를 확인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강화도는 40여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는데도, 그 시기 유적은 많이 발굴되진 않았다.
한 나라의 유물이나 사적은 국민의 자긍심과 연결된다. 앞으로 묘지사 터의 학술 자료를 토대로 그 가치를 일깨우고 보존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지역 문화유산을 활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민의 다양한 참여를 유도하는 등 지속적인 힘을 쏟아야 할 터이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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