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소음·진동 민원 넣어도 대책은 '함흥차사'

평택·여주지역 주민들 극심한 고통
“밤잠 설쳐”…“집안 전체가 둥둥거려”
지자체 '속수무책'…군 “어쩔 수 없다”
양국 참여 분과위 안건 처리 '깜깜이'
국회도 '쩔쩔'…공개 자료 1건도 없어
▲ 6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2006년 확장 공사를 통해 대추리,도두리 대부분의 주거 지역을 기지에 편입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6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2006년 확장 공사를 통해 대추리,도두리 대부분의 주거 지역을 기지에 편입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피해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언제인지, 어디인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주한미군의 헬기 훈련 때문이다. 단순 피해라 치부하기엔 지역 주민 일상이 '공포' 그 자체다.

정부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참사' 이후 미군과 협력해 유사한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 피해 주민들은 아무런 도움을 못 받고 있다. 소파(주한미군지위협정·Statue of Forces Agreement)를 통한 해결 성과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어 논란을 키우고 있다.

▶관련기사 3면<[못다 핀 꽃, 그리고 잊힌 약속] (하) 김종귀 변호사 “20년 된 규정…현실에 맞게 보완·개정해야”>

 


 

▲정부와 미군, 법까지 외면하는 '훈련 피해'

6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쯤 평택시 지제동과 동삭동에 사는 주민들은 미군의 헬기 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진동·분진 등 피해에 직접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해당 지역은 주택이 빼곡한 도심이다. 7만여명이 살고 있는데, 5㎞쯤 떨어진 미군 캠프 험프리에 이·착륙하는 헬기 훈련 반경이 겹치면서 주민들이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인 피해 조사에 나서고,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해달라는 '주민 운동'이 시작되기 이른다.

정부와 맞서본 적 없는 주민들은 당연히 지방자치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무려 8000명이 간절한 마음으로 서명한 탄원서를 만들어 한 달이 지난 11월 평택시에 제출했다. 4개월 만인 지난 3월 미군의 답이 돌아왔지만, '정보가 불충분해 직접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는 해명이었다.

미군은 또 '모든 비행시간 및 빈도는 최소한의 준비태세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운항된다', '한반도 전역에서 소음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함께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가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주민들을 안심시킬지 계획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셀프 조사'가 이뤄졌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음측정기기로 다양한 지점에서 헬기 소음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평균값이 70~85데시벨(Decibel·소리 세기 단위)로 측정됐다. 80데시벨은 철로변이나 지하철 내 소음과 맞먹는다. 대화가 어려워지고 청력장애가 올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해결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다. 지제동·동삭동 주민들이 외교부가 평택 내 운영하는 '소파 국민지원센터'에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소음을 '미칠 정도'라고 표현한 팽성읍 주민 A씨는 “기습적인 헬기 소음에 밤잠을 설치고 불안 증세까지 있다. 여러 곳에 아무리 민원을 제기해도 해결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관련법은 주민들을 두 번 울린다. 현행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 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은 80웨클(WECPNL·항공소음단위)이상 소음 피해 지역에 각종 지원이 가능한 근거를 담고 있으나, '진동'은 어디에도 없다. 헬기의 경우 날개(프로펠러)가 회전하며 만드는 진동피해가 심각하다. 진동을 경험한 주민들도 '집안이 떨릴 정도'로 표현한다.

동삭동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는 “집안 전체가 둥둥거리는 진동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했다.

실제 인근 여주지역에서도 2020년부터 사전 통보도 없는 미군 헬기 훈련에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는데, 시가 현장 조사를 하자 '집 천장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을 느낌' 등과 같은 진동 연관 피해 증언이 다수 확보됐다.

지자체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미군 훈련을 조율하는 권한은 지자체에 전혀 없다.

평택시 관계자는 “지역으로 미8군단, 미2사단 등이 이주하면서 미군기지 규모가 커졌으나 제대로 된 훈련 피해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미군은 대화 의지가 없고, 국방부로 건의 창구가 단일화됐으나 훈련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 6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2006년 확장 공사를 통해 대추리,도두리 대부분의 주거 지역을 기지에 편입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6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2006년 확장 공사를 통해 대추리,도두리 대부분의 주거 지역을 기지에 편입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소파'에 부쳐지는 훈련 피해, 과정은 정작 '비공개'

헬기·장갑차 등을 동원한 주한미군 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반드시 한·미 관련 당국이 참여한 소파 분과위원회(소음·환경·시설 등 약 20개)를 거쳐 처리하게 돼 있다. 주민 민원 등을 근거로 소관위원회에 안건이 상정되면 관계자들이 협의하고 방안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소파 분과위가 안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면 예방 대책을 만들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게다가 처리 과정 자체가 '깜깜이'다. 의정부·동두천·양주·평택·여주 등 피해 지자체조차도 지역의 민원이 소파에서 다뤄졌는지 여부를 모를 정도다.

훈련 피해는 지역 현안이고 주민들의 관심사이지만, 소파 분과위는 국회에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불가침 영역'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지금껏 국회에 공개된 자료가 한 건도 없다고 알려졌다.

그 이유는 미군 측이 군사기밀 등을 제시하며 꺼리고 있어서다. 인천일보는 앞서 국회를 통해 지난 20년(2002년~2022년) 동안 경기지역 미군 헬기·장갑차 등 소음피해 관련 안건을 소파 분과위에 상정하거나 해결한 사례를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정보공개 요구를 받은 국방부는 “소파 분과위 안건 및 해결 사례 등의 내용은 소파 규정에 따라 미 측의 동의 없이 제출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김현우·이경훈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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