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손님 많아 '시식빵 인심'
지역 아동센터·독거노인 봉사
“아들에게 비법 전수해 줄 것”
“시장 안에 빵집이 10개가 넘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우리랑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남았죠.”
평택 지산동에서 케잌나라를 운영하는 김대식·이순이 부부의 자부심 넘치게 말했다.
이들 부부는 서로 기대고 격려하며 오전 6시부터 새벽 12시 반까지 평택의 명물인 케잌나라를 정직하게 운영해오고 있다.
“경북 상주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도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17살 어린 나이에 동네 형님들 따라 서울로 올라왔고, 어느 날 우연히 동창 친구가 종로1가에 위치한 한 제과점을 소개해줘서 여기서 제과·제빵 기능을 배워 일을 하게 됐죠.”
손재주가 좋았던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제과점에 직접 만든 빵을 납품하게 됐고, 빵에 흥미를 느끼던 찰나에 제과점 사장님의 권유로 29살 시작했던 창업이 어언 30년이 넘었다.
1963년생인 그가 빵 하나만 보고 걸어온 외길 인생은 45년이 됐다.
케잌나라를 들어서면 매장을 가득 채운 80여 가지의 먹음직스런 빵과 함께 다양한 상패가 눈길을 끈다.
국제 빵·과자 박람회 등 세계와 국내 유명 대회에서 입상해 받은 것들이다. 빵에 대한 그만의 진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평생을 빵 한 분야에만 매진해 빵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아 올해는 국가 공인 제과·제빵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가 손재주가 있거든요. 영덕대게 모양으로 공예과자를 만들어 입상을 했죠. 우리 나잇대에 국제 박람회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죠.”
IMF 때도, 코로나19 때도 어려울 법 했지만, 케잌나라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김대식 명인이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서울, 동탄 등 멀리서 옛 생각이 나서 오는 손님들이 많은 만큼 시식빵을 자주 내놓는다는 점도 인기비결이다. 그 힘이 지금의 케잌나라 백년가게 타이틀, 그리고 국가 공인 명인 선정으로 이끌었다.
“빵은 따끈따끈하게 갓 구워져 나오는 빵이 제일 맛있어요. 금방 나온 빵을 손님들 오시면 그냥 잘라서 드시라고 드리죠. 그리고 저희 주변에 병원도 많고, 케잌가게다보니 부모님이 사주셨던 케이크가 생각난다면서 아이들 손 잡고 오시니까 옛날 생크림 케이크, 고구마 케이크 종류도 잘 나가죠.”
창업 초기 3년간 김대식·이순이 부부 단둘이 운영했던 케잌나라에 지금은 12명이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 명인의 일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여전히 새벽 5시 반에 나와서 빵 반죽을 하고, 지역아동센터와 인수원 등에 사랑의 빵 만들기 재능 기부 봉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빵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저의 삶에 가장 큰 부분이기에 빵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죠. 저희는 멀리서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정말 많으신데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신선하고 맛있는 빵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게는 항상 켜져 있다고 생각을 하셔서 그런지, 출근 전에도 가게 마감 후에도 빵을 드시러 오시거든요. 그래서 영업시간을 줄일 수도 없죠. 그 덕에 근처에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손님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라 생각해요. 거기 손님은 저희 절반도 훨씬 못 미치죠.”
김 명인은 봉사와 선행을 실천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경기도지사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찾아주시는 손님들의 발걸음에 힘입어 작지만 소중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북 에버다학교, 서탄면 사랑의 배달촌, 송북동 요한의 집, 서정동 인수원, 서정동 푸드마켓, 현재는 지산동과 서정동 지역 아동센터와 독거노인을 돕고 있습니다 .”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김대식·이순이 부부의 꿈은 케잌나라가 평택의 명물로 100년 넘게 이어지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을 만들어서 손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이젠 60이 넘었고, 아들에게 빵 하나만 보고 살아온 외길인생 45년 동안 갈구해온 저만의 숨어있는 제과·제빵 기술과 운영 방법을 전수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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