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ES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왔습니다. ESG는 환경보호(E), 사회적 책임(S), 투명경영(G)를 뜻하지요. 그 이유는 ESG 평가가 지속가능성장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기업의 실적과 평가는 재무적 성과에 집중되었습니다. 재무적으로 실적이 좋은 기업은 우수한 기업으로 인정되어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었고 이는 또 다른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뤄 온 시장경제와 기업의 존재 목적이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조짐은 경제양극화 때문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019년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자본주의 재설정’ 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200년을 훨씬 넘게 지속되어온 자본주의 체제가 고장이 났다는 진단이었습니다. 한편 미국 CEO 협의회에서도 기업의 존재 목적을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에서 ‘이해 관계자’로 바꾸었습니다.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ESG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2006년 UN은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을 통해 ESG 이슈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를 장려하였습니다. 그동안 ESG는 다소 잠잠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모건스탠리가 전 세계 기관투자자 110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0%가 ESG 투자를 실행하고 있으며, 15%는 향후 ESG 투자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자본주의 재설정, 기후 변화, 코로나19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핵심요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강화입니다. 기업들은 그동안 CSR을 위해 선행과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 협력사 지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CSR은 권고에 불과해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ESG는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비재무적 성과를 통해투자를 받게 되는 기준이 됨으로써 지속가능한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요인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ESG는 CSR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강권성 더 나아가 강제성까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ESG를 언급할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택소노미(Taxonomy)라는 용어입니다. ‘산업 분류체계’로 번역되는 택소노미는 원래 생물학에서 유래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분류체계가 잘 정립되어야 유전자 특성, 진화 과정, 생태계, 다른 생물과의 관계 등의 정보를 파악하는데 유용합니다. 그러면 EU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해 세계로 확산되는 택소노미는 무엇이며 어떤 점에서 유용할까요?
먼저 그린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는 목록을 담은 분류 체계입니다. 그동안 금융기관은 재무자료를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해 왔습니다. 그런데 EU 택소노미는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해 재무정보뿐만 비재무적 정보, 즉 ESG 평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린 택소노미는어떤 것이 친환경산업이고 기업의 위장 친환경행위(green washing)인지를 걸러내어 지속성장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원자력과 가스를 친환경산업으로분류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지만 그린 택소노미는 내년 1월 1일 발효될 예정입니다.
여기서 택소노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U 택소노미는 3가지 측면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환경분야(E)는 그린 택소노미가 처음으로 만들어져서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ESG 중에서 사회분야(S)의 분류체계를 소셜 택소노미라고 부르며 작년 7월에 초안이 발표되었고 투명경영(G)에 대한 택소노미는 아직 논의단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소셜 택소노미에 대해 알아봅시다. 2021년 7월 EU에서는 아주 의미 있는 보고서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소셜 택소노미’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원칙을 담은 것으로 친환경 분류체계인 ‘그린 택소노미’와는 달리 사회적 요소를 담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소셜 택소노미는 무엇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지를 분류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소셜 택소노미는 4개의 사회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을 수직적 차원(vertical dimension)과 수평적 차원(horizontal dimension)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수직적 차원은 적절한 삶의 기준 향상을 제시하고 두 가지 서브 목표도 담고 있습니다. 수평적 차원의 사회 목표는 '노동할 보람이 있는 양질의 일자리 보장(ensuring decent work)', 소비자의 이익 증진, 지속가능한 커뮤니티 조성의 3가지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ESG가 이슈로 대두된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역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때문입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한 작업장 셧 다운, 공급망 훼손, 소득 불평등의 심화 등 여러 문제가 등장하면서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은 문제 해결을 위한 경영전략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게 되었습니다.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적합한 사업 활동이라 할지라도, 노동 환경이 열악하거나 고객 또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소셜 택소노미는 이를 걸러내는 사회적 장치이며, 사회적 이슈에 바람직하게 대응하는 기업에 투자를 촉진하는 기준이 됩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소셜 택소노미가 담고 있는 철학은 우리가 추구하는 동반성장에서 다루는 이슈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소셜 택소노미는 ISO26000을 기본으로 하고, 금융과 관련해서는 ISO 14030, ISO 14097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셜 택소노미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주주, 직원, 고객만이 아닌 전체 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ESG 경영은 주주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해관계자와 동반성장을 실천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소셜 택소노미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역할에 대한 시각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비재무 성과가 포함된 ESG 경영이 필요하다는 것도 주요한 흐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 확대 중심의 경영 활동을 펼쳐 왔지만 재무적 가치 밖의 영역에서 예기치 못한 리스크로 고객에게 자사의 제품을 외면받아 위기를 겪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이 친환경적인 생산과정을 거치더라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거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SG가 화두가 되면서 동반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CSR, ISO26000 등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핵심은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목적은 좋은 제품을 값싸고 제때 공급해 소비자 효용을 높이는 동시에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본업에 충실해야 사회공헌도 하고비재무성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동반성장 철학을 가미하면 친환경적인 생산과정, 협력사와 상생과 협력, 투명한 경영 등을 통해 지속가능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ESG 경영은 비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어찌 보면 ESG 경영은 굳이 할 필요가 없지만 금융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ESG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 고민하는 편협된 시각을 가진 기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역할과 목적이라는 기본적인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CSR) 개념을 넘어 기업경영 전반에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실현해야 하고 이를 기업 경영에 내재화해야 합니다. 최근 시장의 반응은 짝퉁 친환경 활동인 그린 워싱뿐만 아니라 진정성 없는 사회활동인 소셜 워싱(blue washing)에 대해 갈수록 냉담해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진정성 있는 동반성장 활동을 해야 하고 나아가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끝으로 기업 간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최근 세계경제환경은 코로나 팬데믹, 에너지 위기, 원자재 수급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에서 준비중인 핵심 원자재법안(CRMA) 등입니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내년부터 공급망 실사법(due diligence)을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건강한 환경과 노동권, 인권 보호를 목표로 하며 기업에게 공급망 내의 다른 기업들에게 인권 및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는 지속가능경영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대기업은 협력기업을 진정성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동반성
장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EU 택소노미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으로 환경 관련 이슈를 우선으로 다루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환경변화로 사회적 이슈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EU를 중심으로 어떤 경제활동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가를 나타낸 기준과 이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셜 택소노미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소셜 택소노미는 기업 활동중에서 무엇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활동이 해로운지를 판별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이 동반성장을 위한 활동인지, 어떤 것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경청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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