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창원 배치, 내연부품은 전기차에 떠밀린다

◆ 700명 창원 배치 '희망자 230명'
불만 터져 “2년 내 복귀”도 절레
노사단협상 '강제 가능' 발동동

◆ 내연부품 37% 전기차에 불필요
2공장 부지 '전기차 기지' 가능성
11% 감원 불가피한데 '대책 뒷전'
부품·정비·검사산업 약화 전망

 

▲ 한국지엠 창원공장.
▲ 한국지엠 창원공장.

#파편 열

“저마다 전부 고충이 있는 거 아닌가? 어린 자식이 있는 맞벌이 가정은 육아를 어찌하라는 것이며, 본인 몸이 아프고 가족이 아픈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년을 어찌 버티라는 것인가?”, “열심히 일한 것이 잘못인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게재된 조합원 작성 글 일부 발췌.

 

▲부평에 남은 반쪽 공장과 385㎞ 창원행

한국지엠 부평2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인력 재배치 문제를 놓고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불만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초 부평2공장을 담당한 1200여명의 인력은 내년 상반기부터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 생산이 예정된 창원공장으로 700여명, 부평1공장 500여명씩 각각 나눠 전환 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천에서 경남 창원까지 근무지를 이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조합원들이 재배치 신청을 꺼리면서, 창원공장 희망자는 약 230여명에 그친다.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창원공장 근무 후 2년 내 부평공장으로 복귀하는 파견근무를 내놨지만, 조합원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전환배치 근무 희망자가 적을 경우 가장 최근에 입사한 직원부터 우선 배치한다는 노사 단체협약을 놓고, '결국 강제발령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우려도 나온다.

사측과 노조 측이 맺은 단체협약에는 근무지 전환 배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개인 면담 등을 통해 기준 인원보다 희망자가 많은 경우 입사순으로, 적으면 입사 역순으로 배치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희망자가 충분치 않을 경우, 일부는 부득이 창원공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환 배치 문제를 놓고 노동조합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상황과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면서 “최대한 강제 배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도록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내연기관차 전용 부품과 전기차 전환시 사라지는 부품./자료출처·제작=일본자동차부품협회에서 KOTRA·KDB산업은행에서 재인용·이연선 기자
▲ 내연기관차 전용 부품과 전기차 전환시 사라지는 부품./자료출처·제작=일본자동차부품협회에서 KOTRA·KDB산업은행에서 재인용·이연선 기자

#파편 열 하나

“전기차 좋죠. 모든 자동차회사가 전기차 만들잖아요. 하지만 내연기관 관련 기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 없이 전기차만 외치고 있으니,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느낌이에요. 누구 하나 관심 없잖아요. 미래를 위한 것도 좋은데, 그럼 현재의 우리는 누가 보살피고 책임지냐는 거예요.” 인천지역 자동차산업 관련 종사자 이창준(가명)씨.

 

▲전기차 '당연', 그런데 우리는?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미래발전 방안 중 하나로 2공장 부지 내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생산기지 유치를 주장해왔다. 올해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에 대한 교섭'에도 해당 안이 담겼으며, 지속적인 논의 끝에 '미래차 생산을 위한 노사 간 변화대응 특별협의체 구성' 및 '해외 벤치마킹 활동'이라는 합의를 끌어냈다.

완성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전기차 생산이 늘수록 인력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전기차 유치 자체에 간절하다 보니, 한국지엠 전기차 전환에 따라 예상되는 인력 구조조정 및 관련 산업 대책 마련 등은 후순위로 밀려있다. 지역 내 전기차 생산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하는 사안들이다.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고 있는 완성차 업계에서는 고용인원 축소가 실제 이뤄지고 있다.

지난 8월 미국의 포드 자동차는 2000명의 정규직과 1000명의 하청 에이전시 고용 파견 직원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전환을 시도하면서 직원들에 대한 감원을 시작한 것이다. 국내 현대차 노조는 전기차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제조공정과 고용구조 변화에 대한 대책을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경우, 전기차로 전환할 시 약 11%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패막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지닌 정규직들과 달리, 부품산업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미래차 시대 자동차부품산업 전망과 노동조합의 과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미래차 전환이 부품산업에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연기관차에 드는 3만여개의 부품 가운데 37%에 달하는 1만1000여개의 부품이 전기동력차에는 필요하지 않다. 유형별로 보면, 엔진부품이 내연기관차에는 6900개가 소요되지만, 전기동력차에는 모두 사용되지 않는다. 구동·전달장치 부품의 경우 내연기관차에는 5700개가 장착되는 반면, 전기동력차에는 그중 37%인 2100개가 필요하지 않다. 내연기관차에 3000개가 들어가는 전장부품은 전기차에서 70%(2100개)가 불필요하다.

부품의 감소는 부품산업을 시작으로 정비, 검사 등 관련 산업의 약화와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전기동력차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는 동일 물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노동 수요가 3분의 1 수준으로 적다. 전기동력차 부품업체의 성장이 흡수할 수 있는 노동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노동시장 전반의 노동 수요가 적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실업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과거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단순직무 일자리에 종사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차로의 전환을 위한 대응전략 부족도 지적했다.

연구원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정책은 부품사보다 완성사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고, 특정 직종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고용노동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가장 시급한 상황에 놓인 내연기관 부품사에 특화된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가치사슬 구조 전반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하청업체의 미래차 전환과 재직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 지역 산업 생태계와 지역 노동시장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원진·곽안나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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