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시 산성리 '용마루'
3대 백승옥 대표가 이어받아
“할머니 초심 잃고 싶지 않아
화학조미료는 하나도 안 써”
팬데믹 여파 매출 '제로' 위기
'반반전'·밀키트 출시로 돌파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남한산성 꼭대기 가장 깊은 곳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뜨끈한 보양식으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업력 43년 차 닭요리 집이 있다.
“'칭찬 도장'도 받았으니 100년 넘게 이 자리에서 고목처럼 든든하게 '내 인생 맛집'으로 버티겠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용마루'는 산성리 토박이 가족이 3대를 이어온 손맛으로 운영하는 오래된 식당이다. 산성리 로터리에 산장식당으로 시작해 1997년 지금의 자리에 용마루로 이름을 바꿔 이전했다.
용마루는 닭 요리집답게 닭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메뉴인 토종닭볶음탕과 매출 1위인 능이토종닭백숙의 맛의 비밀은 최상의 재료와 손맛에 있었다.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을 지켜내기 위해 할머니의 손맛 그대로 매년 봄·가을철마다 직접 담근 고추장·된장·간장과 메주를 숙성시켜 사용하고, 3대를 이어온 손맛의 정수인 산나물과 김치는 직접 만든다.
물론, 최상의 식재료를 상에 내기 위해 고추·콩 등은 지역 내 농장과 제휴해 계약재배하고 있고 나물 등은 직접 농사짓고 있다. 100년을 이어보겠다는 용마루의 진심이 엿보인다.
신선한 채소와 자연 효모로 맛을 내 과식해도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안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지금도 메주를 매달아 놓아서 집에서 쿰쿰내가 나죠. 할머니의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맛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화학조미료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서 다 국내산으로 쓰고 있어요. 손님들이 우리 집은 과식을 해도 속이 편안하다고 하시는 데… 아마 이 덕아닐까요?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단골손님들이 정말 많으시죠. 어렸을 때 저에게 용돈 주셨던 분들이 할머니가 되셔서 이젠 저희 아이들(자식들)에게 용돈도 주시고, 언제든 이 자리에서 손님들에게 '내 인생 맛집'으로 고목같이 든든하게 100년 넘도록 버티고 싶어요.”
40년 넘게 초심을 품고 이어온 만큼 용마루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대를 이어 방문하고 있다.
“반포에 사는 한 손님이 있어요. 가족끼리 오다가 아들이 커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거죠. 상견례 전에 '우리 집안 맛집'이라고 우리 가게 먼저 찾아오니까 그 친구 부모님보다 저희가 먼저 보기도 하죠. 이런 경우는 너무 많죠. 음식 맛있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할머니랑 엄마가 손님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셨죠. 단골손님들은 절 꼬마 때부터 보셨으니까 호칭도 '사장님'이 아니라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죠.”
맛집은 여기저기 많지만 3대를 이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한 것이 용마루가 백년가게로 선정된 비결인 듯했다.
“저희는 하루하루 재료 준비 잘하고 오시는 분들께 맛있는 음식 드리는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지, 이번 달 매출 얼마를 해야겠다. 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쳐야겠다. 이런 건 없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쯤 불에 육수 올려놓고 나물 손질하고, 밑반찬 만들고 장사하는 데 집중하면 금방 밤인 일상이죠. 손님 마감은 저녁 6시인데 정리하면 저녁 8∼9시쯤 퇴근해요.”
이런 용마루에도 시련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0원인 날이 늘어난 것.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멘붕인 상황이라고 회상했다.
이에 지난해 12년 차 워킹맘이었던 딸 임국희씨는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하고 밥 먹는 게 꺼려질 시기였잖아요. 그래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처럼 예약 손님만 받았죠. 그러다 감사하게도 입소문이 퍼져 오셨던 분의 동네 친구들, 가족들로 하나둘씩 예약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용마루는 산꼭대기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노포의 그늘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담았다.
남한산성에선 흔치 않았던 네이버 예약제를 시작했고 최초로 도토리전과 감자전의 만남인 '반반전'을 출시했다.
“팬더믹으로 전 세계가 우왕좌왕하던 시절, 남한산성 꼭대기에도 혹한이 찾아왔죠. 방역 조치와 식당 인원제한은 영하 20도의 강추위보다 더 추웠어요. 온 세상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배달 음식이 친근해지기 시작했는데 남한산성엔 배달 라이더 업체가 단 한 곳도 들어오지 못했어요. 오랜 단골손님들은 '갚은 맛의 뜨끈한 국물로 몸보신 좀 하려 하는데 사장님 배달 안 되나요?', '포장은 되죠?'라고 문의하셨고요.”
용마루는 변화에 발맞추고자 '산 위의 닭'이라는 상표를 출시하고 밀키트를 내놓았다. 가정에서 간편식 밀키트가 보편화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였던 당시를 회상했다.
“밀키트를 출시하기는 너무 늦은 것 아닌가 고민했는데 지금 보면 그렇지도 않은 거죠. 이 세상은 산 위의 닭과 산 아래의 닭으로 나뉜다는 뜻으로, 남한산 위에서 가업을 계승한 가족의 전통과 정성을 가득 담은 기운 좋은 에너지가 담긴 보양식이라고 홍보하고 판매에 전념했습니다.”
용마루는 또 한 걸음을 떼려고 한다. 1∼2인 소가구에 맞는 소량·다품종의 밀키트를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저희 산나물 정식도 진짜 찐이거든요. 입국하실 때 공항에서 바로 저희 가게 오시는 분들, 출국하기 직전에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시는 분들, 입덧 때 오시는 분들… 항상 불현듯 생각나는 맛집이에요. 요즘 1∼2인 가구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소량씩 담은 밀키트를 개발하기 위해 컨설팅 프로그램도 신청해뒀습니다. 전 할머니와 엄마의 인생을 바쳐 이뤄놓은 용마루가 저에게 왔단 점이 너무 감사해요. 이젠 제가 100년 넘게 이어갈 수 있도록 길게 보고 열심히 해야죠.”
/김보연 기자 boyeo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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