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줄줄이 떠나”…'일자리 창출'로 살길 찾는다

하청 비정규직 대량 해고됐지만
정부 보호장치는 부품사에 초점
인력 줄여 활로 모색…업체 증가

동일 지역·업종 재취업 힘들어
일자리 찾아 타 지역으로 이탈
청년층 유출많아…노동자 감소

시·자동차 업계 상생협력 사업
부품 기술 개발 등 국산화 기대
▲ (왼쪽 사진부터) ⑴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자리했던 군산 소룡동 부지는 전기차 생산기업 명신이 사들여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⑵지난 11월 중순쯤. “군산 자동차 부품사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간 기자에게 (사)전북자동차부품협의회 신현태 회장은 그동안 업계에서 진행됐던 일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미래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⑶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에서 활동하던 한 노동자에게 “군산공장에서 일할 때 회식을 주로 어디서 했느냐”고 묻자 “공장 근처엔 마땅한 상권이 없어 군산 수송동과 나운동 쪽에서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나운동 먹자골목 외곽 상권에는 '임대'라고 써 붙인 곳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자리했던 군산 소룡동 부지는 전기차 생산기업 명신이 사들여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지난 2017년 전북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는 군산 경제를 뒤흔든 두 개의 핵탄두였다. 2010년대 후반 내내 도산, 실업, 상권 붕괴, 인구 이탈 등 단어들이 군산을 괴롭혔다.

한국지엠 부평2공장 문 닫는 이슈와 관련해 적고 있는 이번 기획에서 군산 사태를 언급하는 건 자칫 억지처럼 보일 수 있다. 조선과 자동차는 군산 수출에서 44.9%를 차지했을 정도로 지역경제를 떠받들던 거대 산업들이다. 소위 먹고살 게 많은 인천에서 부평2공장 문 닫는 정도의 여파와는 존재감 자체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발생한 하청 비정규직 해고와 자동차 부품 산업 고용 불안만 부평2공장 사태와 연관 짓는다고 해명한다.

군산공장 폐쇄로 여기저기 흩어진 하청 비정규직,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들 '파편'과 부평2공장 폐쇄 여파로 담장 옆에 방치된 '파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연이어 문을 닫자 정부는 군산을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해직 노동자들 대상으로 모니터링과 각종 지원 정책 등을 통해 살피기라도 했다. 부평2공장을 둘러싼 해직 혹은 해직 위기의 인천 노동자들은 피해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회적 보호막도 기대할 수 없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에서 활동하던 한 노동자에게 “군산공장에서 일할 때 회식을 주로 어디서 했느냐”고 묻자 “공장 근처엔 마땅한 상권이 없어 군산 수송동과 나운동 쪽에서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나운동 먹자골목 외곽 상권에는 '임대'라고 써 붙인 곳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파편 일곱

“군산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정부 관료들이 자동차 부품사들 참 많이도 찾아왔어요. 그때 우리가 줄기차게 말했던 게 제발 사람 유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고요. 실업급여, 그만두고 나서 주지 말고 회사 월급 명목 식으로 전환하면 다만 몇 개월이라도 사측에서 시간을 벌 수 있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도 업계서 나왔죠. 왜냐면 회사도 군산공장 말고 다른 거래처를 찾아야 하니까... 근데, 고용 유지 이 부분은 법 개정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에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와서 보셔서 알겠지만 군산 부품사들 결국 인력을 줄였어도 여기저기서 활로 찾았어요. 부평2공장은 군산공장이랑 다르게 사전에 폐쇄 계획이 있었으니까 주요 부품사들은 대책을 이미 찾았을 거예요. 문제는 한국지엠 의존도가 높거나 영세한 곳들이겠죠. 이 경우에도 군산처럼 해법을 찾을 시간이 제일 필요할 거예요.” 군산산업단지 모 자동차 부품사 대표 김선민(가명)씨.

 

▲군산 자동차 부품사 늘었는데 직원 수는 급감. 인천과 비슷해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1년 전인 2017년 군산에서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소속 노동자는 82곳 업체에 모두 5151명이었다(통계청). 다음 해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2018년 업체는 79곳으로 줄고 일하는 인원은 3319명으로 급감한다.

산업분류 중분류에 있는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은 소분류 '자동차제조업', '자동차 차체 및 트레일러 제조업', '자동차부품제조업'을 합한 것이다. 산업 구분에서 자동차 부품 쪽과 가장 밀접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군산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사업체는 군산공장이 문 닫기 전인 2017년(82곳)보다 오히려 늘어난 97곳이다. 하지만 소속 노동자 수는 급감해 2017년 5151명보다 47.8% 줄어든 2691명에 불과한데, 이는 해당 산업 전방에서 영세화가 진행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군산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전체 사업체 가운데 노동자 10인 미만 사업장 비율은 2017년 46.3%, 2018년 48.1%, 2019년 60%, 2020년 60.8%로 매년 상승 곡선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천에서도 역시,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소속 노동자는 지난 1~2년 사이 상당수 줄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사업체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지엠 의존도가 높은 지역 자동차 산업에서 부평공장 물량 변화가 여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파편 여덟

“군산공장 하청 비정규직들도 전부 해고됐지만 고용위기지역 지원에선 사각지대에 있었어요. 정부 보호 장치는 주로 자동차 조선 정규직이나 부품사들에 초점이 맞춰졌었죠. 당시 노조원들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냐고요? 군산에 남은 사람도 있고 익산처럼 근처 도시로도 많이 갔어요. 실업급여 끊기기 전에 일자리 잡아야 하니까 마음들이 급했는데... 다들 고생 많았죠.”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전 지회장 박민수(가명)씨.

 

▲한 번 대량 해고되면 고향에서 살기 쉽지 않다

군산시 등과 함께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 관련 모니터링과 각종 연구를 진행하는 호원대학교를 찾아 “군산공장 폐쇄 이후 지난 4년 동안 군산시민의 가장 큰 어려움이 뭐였느냐”고 묻자 김용환 호원대 교수는 “고소득자들의 소득 저하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군산을 떠나는 행렬들”이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군산공장 폐쇄 직후인 지난 2019년 2월 군산지역 사업체와 시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를 공유해줬다.

퇴진 전 직장이 '한국지엠', '현대중공업', '자동차협력업체', '조선업협력업체' 등으로 구성된 394명 근로자 집단에 재취업을 원하는 산업 분야를 묻자, 각자 자신들이 몸 담았던 업종을 꼽는 숫자가 월등하게 높았다.

'자동차협력업체'도 마찬가지로 설문에 나선 49명 중 자동차 분야로 재취업하고 싶다는 응답이 60%를 넘겼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재취업하고 싶은 지역으로 군산을 지목했다. 자동차든 조선이든 지역 내 일자리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같은 업종 같은 지역 재취업을 찾기 힘들어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군산에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놓였었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김용환 교수는 “그나마 군산엔 타타대우 등 상용차 시장이 있어서 기업들이 살길을 조금씩 찾았어요. 하지만 인구 유출이 계속되는 게 좀 걸립니다. 청년층 유출이 많은데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고소득 일자리가 사라진 게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 지난 11월 중순쯤. “군산 자동차 부품사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간 기자에게 (사)전북자동차부품협의회 신현태 회장은 그동안 업계에서 진행됐던 일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미래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 지난 11월 중순쯤. “군산 자동차 부품사 얘기를 듣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간 기자에게 (사)전북자동차부품협의회 신현태 회장은 그동안 업계에서 진행됐던 일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미래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해줬다./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파편 아홉

“군산공장 문 닫은 일은 이제 다 잊었습니다. 직원 감원 안 하고 위기 넘어가려고 다들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군산 자동차 부품 산업 살리기 위해 부단히들 노력했는데 현실과의 괴리도 조금씩 보이니까 아예 기업들이 직접 활로를 찾으려고 뭉쳤었죠. 성과도 냈습니다.” (사)전북자동차부품협의회 신현태 회장. “군산공장 일을 잊었다”고 했지만 노트에 곧이곧대로 적진 않았다. 회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라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옆에 해석을 달았다.

 

▲현장과 지자체, 정부가 머리를 맞대면 살길도 있다

군산시는 지난 11월 초 보도자료를 하나 낸다. 지역 자동차 업계와 군산시의 4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된다는 내용이다.

군산시 등과 상용차 완성업체, 부품업체는 공동으로 개발 자금을 조성해 단기간 사업화가 가능한 수요기반형 부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업 첫해인 올해에는 투자기업 공모 선정 결과 타타대우상용차(주)가 선정됐으며 군산 7개, 김제 5개의 부품업체가 운전석 정면 계기판(I/P ASSY), 공기배출구(AIR VENT ASSY) 등 상용차 부품 6종을 개발하고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상용차 수입 부품과 시스템의 국산화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일자리 130명, 4000억원 매출액 증가가 기대된다는 게 군산시 계산이다.

해당 상생협력 사업은 신현태 회장 등이 “군산공장 사태로 다들 어려우니, 자동차 수입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겠다. 지원해 달라”고 지자체에 제안, 지자체도 이를 수용하면서 성과로까지 이어졌다.

신현태 회장은 “부평2공장이 문을 닫는 인천도 기업과 지자체가 일감 창출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면 현장에 맞는 해법들이 있을 거다”라고 조언했다.

 

/김원진·곽안나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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