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사 현장에 놓인 추모 꽃./사진=연합뉴스.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쳤던 그 날밤으로부터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대한민국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일차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어디까지 왔을까.

27일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현재 경찰·소방·행정 공무원 등을 중심으로 최소 1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직무유기 등 혐의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게다가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고발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져갈 때까지 직접 수사하기로 하는 등 '성역 없는 수사'까지 공언하기도 했다.

특수본은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이달 1일 501명 규모로 출범해 이튿날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용산구청 등을 압수수색하고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당일 현장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 중이다.

이후 용산구 부구청장, 안전건설교통국장, 이태원역장부터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전 서울경찰청 경무관 등을 입건해 법적 책임을 따져보는 중이다.

특수본 수사가 사고 원인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정보보고서 삭제 의혹이나 경찰의 늑장보고 경위 등에 매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고의 직접적 원인·책임과는 먼데다 감찰로 확인 가능할 사안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까지 적용한 건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분야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는 재난안전기본법 등 규정에 따라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 그저 법적 책임을 나누는 데만 집중할 뿐 직접적인 참사의 원인 규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윗선’으로 지칭되는 이들에 대한 수사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특수본은 수사 초반 행안부와 서울시 책임에 대해 "법리 검토 중"이라고 재차 밝힌 뒤 지난 17일에서야 강제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집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 정치적 판단으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 장관에 대한 소방노조의 고발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는 천명과는 달리 지난 23일 고발인 조사 이후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정치권에서도 이태원 압사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긴 했지만 조사 대상 기관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표출돼 한때 회의가 파행하는 등 여야 간 '뇌관'이 첫날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거 증인 채택 문제 등으로 공전을 거듭하다 한 차례의 청문회도 열지 못한 채 종료된 2014년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8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민인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인지 이제 선택하라"며 이 장관에 대한 파면 결단을 압박하는 등 공세를 멈추지 않아 애써 닻을 올린 국조가 좌표를 잃은 채 표류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책임 공방, 정치 공세로 점철된 한 달 동안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고, 그저 무력하게 죄책감만 느낄 뿐이었다.

지난 8~10일 한국갤럽이 이번 참사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자유 응답) '대통령/정부'(20%), '경찰/지휘부/청장'(17%)에 이어 '본인/당사자/그곳에 간 사람들'(14%)이란 답이 나왔다. (▶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 보러가기)

희생자와 피해자를 탓하는 가해자적 시선에 유가족도, 살아남은 피해자도 모두 주홍글씨에 갇혔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비판보다 이들에 향한 비난과 가해자적 시선은 이런 참사 재발 방지에도 걸림돌만 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현 10·20세대가 세월호와 코로나를 연달아 겪은 고립 세대인 만큼 기존 잣대로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20대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가장 활발한 시기에 억눌렸다"며 "올가을 3년 만에 열린 대학축제에 유달리 많은 인파가 몰린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즐거움에) 목말라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현장에서 안전 문제나 위험을 탐지하는 건 정부의 몫"이라면서 "(정부가) 젊은 층의 억눌림과 갈망에 무관심했고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지금 20대는 수년간 고립됐다가 올해 2학기 들어서야 비로소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게 되면서 빗장이 풀렸다"며 "공동체나 지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함께 놀 만한 공간과 축제가 전무했던 것을 기억하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감히 유족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이 이 시간을 좀 덜 고되게 버틸 수 있도록 함께 지켜봐 주고 잊지 않길 바라본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