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진법은 태조가 삼군부(三軍府)에 명령을 내려서 《수수도(蒐狩圖)》와 《진도(陣圖)》를 간행하게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태조 때 정도전이 일찍이 《오진도(五陣圖)》와 사시의 사냥하는 것을 그린 그림인 《사시수수도(四時蒐狩圖)》를 만들어 바치었는데, 당시 정도전·남은(南誾)·심효생(沈孝生) 등이 군사를 일으켜 국경에 나가기를 꾀하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오례를 정비하였는데, 군례의 의식 중에는 해마다 9월과 10월 중에 도성 밖에서 십간(十干)의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에 해당하는 강일(剛日)에 대열하는 의식인 대열의(大閱儀)가 있다. 대열을 할 때 정렬하는 위치가 정해지면, 동군(東軍)과 서군(西軍)이 50보마다 표(表)를 세워 1행(行)으로 삼은 5행(行)의 서로 이기는 법에 따라 서로 진(陣)을 만들어 이에 응하고, 매양 진을 변경할 적에는 각각 칼과 방패를 가진 군사 50인을 뽑아서 두 군대 앞에 도전(挑戰)하게 하였다. 제1, 제2의 도전은 번갈아 공격하고 방어하는 용겁의 형상[勇怯之狀]이 되었고, 제3의 도전은 균적(均適)한 형세가 되었으며, 제4와 제5의 도전은 승패(勝敗)를 겨루는 형상(勝敗之形)이 되었다. 5진을 마치면, 양군(兩軍)이 모두 직진(直陣)이 되었다.
조선 전기의 진법은 문종 1년인 신미년(1451년) 6월 19일 문종이 친히 《신진법(新陣法)》을 지어서 수양 대군(首陽大君) 및 김종서·정인지(鄭麟趾) 등에게 명하여 함께 교정(校定)하게 하여 완성하였으며, <소자진서(小字陣書)>는 세조 1년인 1455년에 인쇄되었고, <대자진서(大字陣書)>는 세조 5년인 1459년에 인쇄되었다.
오행진법(五行陣法)은 당나라 태종과 이정(李靖)이 역대 병법과 병법가 혹은 장군이나 재상 등의 인물에 대해 서로 묻고 응답한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서 보인다. 이에 의하면 오행진은 오방색으로 말미암아 명명하게 되었는데, 방(方)ㆍ원(圓)ㆍ곡(曲)ㆍ직(直)ㆍ예(銳)는 사실 땅의 형태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군대는 평소에 이 다섯 가지를 익히지 않는데, 이정은 이것으로 어찌 적을 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군사는 거짓된 도이기 때문에 억지로 오행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문종 때 완성된 <진법>의 보주에서는 “오진은 그 형상을 오행에서 취하였다. 방(方)은 금(金)이 되고, 원(圓)은 토(土)가 되고, 곡(曲)은 수(水)가 되고, 직(直)은 목(木)이 되고, 예(銳)는 화(火)가 된다. 상생(相生)은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이다. 상극(相克)은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목극토, 토극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에서는 중국과 달리 오행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법>에서 기(旗)의 쓰임에는 응답하는 ‘응(應)’이 있고, 땅에까지 대지 않고 다시 일으키는 ‘점(點)’이 있고, 땅에까지 댄 뒤에 다시 일으키는 ‘지(指)’가 있고, 보고하는 ‘보(報)’가 있고, 휘두르는 ‘휘(揮)’가 있다. 휘(麾)에는 ‘응(應)’이 있고, ‘점(點)’이 있고, ‘지(指)’가 있고, ‘휘(揮)’가 있고, 눕히는 ‘언(偃)’이 있고, 드는 ‘거(擧)’가 있다.
각(角)에는 영(令)하려는 때에 먼저 대각(大角)을 불어서 경계하는 ‘영(令)’이 있고, 소각(小角)을 부는 ‘전(戰)’이 있고, ‘촉(促)’이 있는데, 대각(大角)의 촉(促)은 진퇴(進退)에 쓰고, 소각(小角)의 촉(促)은 교전(交戰)에 쓴다. 그리고 보고하는 ‘보(報)’가 있다
고(鼓)에는 휘(麾)를 지(指)하고 북을 치는 ‘진(進)’이 있고, 전각(戰角)을 불고 북을 치는 ‘전(戰)’이 있고, 드물게 치면 전진(戰進)하는 ‘서(徐)’가 있고, 자주 치면 전진하는 ‘질(疾)’이 있다.
금(金)에는 자주 치는 ‘퇴(退)’가 있고, 드물게 치는 ‘지(止)’가 있다. 비(鼙)에는 고(鼓)를 요란하게 치면서 크게 외친다. 탁(鐸)에는 숙정(肅整)하여 떠들지 않는다.
군령은 매우 엄격하여 진퇴 좌우(進退左右)를 영(令)하여도 좇지 않는 자와 마음대로 진퇴 좌우하는 자는 다 목을 베는 참(斬)에 처하였다. 장표(章標)를 잃은 자는 참(斬)하고, 군사(軍事)를 누설한 자도 참하고, 적에게 항복한 자는 그 집을 몰수하였으며, 적과 사사로이 교통(交通)한 자는 참하고, 금고기각(金鼓旗角)을 잃은 자도 참하였다.
그렇다면, 북의 타법 중에서 전진하라는 신호인 ‘진(進)’과 교전하라는 신호인 ‘전(戰)’ 그리고 전진(戰進)할 때 드물게 치는 ‘서(徐)’와 자주 치는 ‘질(疾)’은 현행 풍물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또한 금(金)의 경우, 후퇴할 때 자주 치는 ‘퇴(退)’와 멈출 때 드물게 치는 ‘지(止)’는 어떻게 치는 타법이며 현행 풍물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일까?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