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24일 오후 1시부터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2층 대강당에서 ‘제23회 인천 역사 학술회의-인천 연안의 고대문화와 백제’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최근 한반도 중부지역 고대문화연구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는 인천의 고고학적 성과를 알리고 미추홀로 대표되는 인천지역 초기 정치체의 성격과 백제와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인천의 청동기~초기철기시대 고고학적 성과는 지난 1963년 강화도의 지석묘를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다가 영종도의 대규모 개발로 인천지역의 고고학적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검단신도시의 대규모 유적 발굴조사를 계기로 인천의 청동기~초기철기시대 문화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증가했다.

인천지역은 해양과 내륙을 포괄하는 지역적 특성으로 개방적인 신문화 수용 태도를 보이며 활발한 물질문화의 변동이 일어났다.

인천지역에 청동기시대 전기까지 이어져 오던 이중구연토기문화는 전기 후반부터는 공렬토기문화로 전환됐다. 그러나 여전히 시기별, 지역별, 편중양상은 전반적인 흐름 파악을 어려운 상황이다.

김권중 중부고고학연구소장은 “지금까지 자료에만 근거할 때 초기철기시대의 점토대토기문화가 원삼국시대 마한의 기층문화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박경신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팀장은 백제의 진출 과정과 마한의 쇠퇴 과정 중심으로 인천 주변 마한과 백제의 상호작용에 대해 살펴봤다.

인천에서는 마한을 기반으로 한 복수의 지역 정치체 모습이 관찰됐다. 백제는 한강 하구 진출에 어려움을 겪으며 서해 항로에 접근하고 경기 서부와 남부 마한의 연합을 차단하기 위해 경기 서남부지역으로 진출을 도모했다. 백제는 5세기가 되어서야 인천지역에 진출했다.

그는 “유구한 인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학계, 행정당국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인천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학술적인 교류와 전문적인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는 항로를 통해 인천지역 고대 정치체의 추이를 분석했다.

고대사에서 인천지역은 현재의 인천시를 비롯해 인근의 김포, 파주 등을 아우른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해양 환경을 숙지한 지역 해양세력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임동민 교수는 “1세기~3세기 중반 인천지역에서 성장한 정치체들은 해양 환경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백제가 3세기에는 인천지역을 우호적 기항지로 확보하고 서해 연안항로 활용에 필요한 지원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글∙사진 변성원 기자 bsw90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