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의 본디 이름은 자연도(紫燕島)다. 자줏빛 제비섬이라는 뜻이다. 고려 인종 때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귀국 뒤 여러 가지 견문을 모아 엮어낸 '고려도경'에 기록돼 있다. 당시 경원정(慶源亭) 맞은 편 섬에 제비가 많이 날아 붙여졌다고 전해 내려온다. 한 풍수지리가가 인천국제공항 개항 한참 전에 “영종도는 제비가 날 듯이 비행기들이 뜨고 내릴 섬”이라고 '예언'한 바와 일맥상통해 놀랍다.
서긍이 개경으로 들어가기 전 자연도에 묵었던 경원정이 새삼 주목을 받는다. 경원정은 고려 때 중국 사신이나 상인들이 오가는 길에 묵었던 객사다. 현 구읍 선착장(중산동) 주변에 있었다고 알려진 곳이다. 구읍 일대는 지금의 영종도 본섬과 하나로 이어져 있었는데,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자연도에 딸린 조그만 섬이었다. 조선 효종 때 군사적 필요에 따라 화성군 남양면에 있던 군사기지 영종진을 이 곳으로 옮겨오면서 다리를 놓아 자연도와 연결했다. 이렇게 영종진이 자리를 잡은 뒤 자연도는 점차 영종도란 명칭으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인천은 중국 사신과 상인 등이 머물 만큼 몹시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7대에 걸쳐 왕의 외가와 처가였기에 '칠대어향(七代御鄕)'으로도 불렸다. 인주(仁州)로 일컫던 지명이 경원부로 승격된 까닭이다. 경원정은 바로 이때 건립된 객사다. 꽤 수준이 높았던 문화도시 인천을 짐작케 하는 고증이다.
문화도시는 나름대로 역사적 정체성을 지닌다. 인천은 오래 전부터 유적·유물을 많이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상고시대 무덤인 고인돌부터 백제시대 사신들이 중국을 오갔던 나루터 능허대, 강화도 해안에 설치된 각종 돈대, 개항(1883년) 후 세워진 숱한 건축물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본보가 한-중수교 30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했던 '新 고려도경'에서 영종도에 있던 경원정을 복원하자는 기사를 내보낸 것도 인천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이유에서다. 인천이 인천답고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려면 옛부터 내려오는 유적·유물들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경원정 복원은 관광과 교육 등 다채로운 콘텐츠 개발과 활용을 통해 부가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기도 하다.
인천은 유구한 역사를 갖춘 도시다. 고대와 현대를 망라하고 인천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등이 수두룩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인천의 역사를 바로 보고 자긍심을 한단계 끌어올릴 작업을 꾸준히 벌여야 한다. 인천다움을 상징하는 역사는 시민 모두에게 달려 있음을 자각하자.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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