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직원을 가족처럼...“놀이터이자 인생 학교”

효성동서 40년째 미용실 운영
10대 소녀의 꿈 오롯이 자리 잡아
미용실 창업 직원만 100명 '뿌듯'
▲ 유영례 대표는 효성동에서만 40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10대 시절 가난을 이기려고 인천 효성동에 올라와 미용을 배우며 야간학교에 다녔다.

유영례(60) 쌔롬미용실(계양구 안남로 462) 대표는 효성동에서만 40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유 대표에게 쌔롬미용실은 10대 소녀 시절 삶과 꿈이 오롯이 자리 잡은 곳이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컸던 그는 핍진한 삶을 이겨내려고 고향 충남 연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천 효성동으로 올라왔다.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고 미용사였던 이모 주의순(76) 씨 미용실에 일을 도우며 알음알음 미용기술을 배웠다. 남편 엄기원(63)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1남 1녀를 뒀다. 딸 엄지애(26) 씨는 어머니의 길을 이어 대학에서 미용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서경대에서 미용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유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오전 9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일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손님이 줄어 미용사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친딸처럼 정들었던 직원들이 떠날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다.

“미용사가 7~8명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이 줄자 직원들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40여년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단골이 많다. 손님들은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낸 이웃이자 벗이다.

“제가 아가씨 때 만났던 고객들이 어느덧 나이가 들었어요. 그분들의 자녀나 손주들이 저희 미용실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 쌔롬미용실에는 40년 단골 고객이 많다. 유영례 대표는 고객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 친정어머니나 언니, 동생, 자식처럼 생각한다. 이는 쌔롬미용실이 한자리에서 40여 년을 버틴 원동력이다.
▲ 쌔롬미용실에는 40년 단골 고객이 많다. 유영례 대표는 고객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 친정어머니나 언니, 동생, 자식처럼 생각한다. 이는 쌔롬미용실이 한자리에서 40여 년을 버틴 원동력이다.

한때 효성동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저녁이면 부평공단에서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거리를 매웠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 한산한 풍경이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쌔롬미용실을 꾸준히 찾는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인건비와 임대료를 빼면 수익이 크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도 단골손님이 계시기 때문에 계속 일하는 거예요.”

유 대표는 고객 모두를 가족으로 생각한다. 이런 철학은 쌔롬미용실이 40년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고객을 돈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친정어머니나 언니, 동생, 자식처럼 생각해요.”

유 대표에게 쌔롬미용실은 놀이터이자 삶을 배우는 인생 학교라고 한다. 이곳에서 일을 배우고 미용실을 창업한 직원만 100명이 넘는다. 직원들이 독립할 때마다 친딸을 시집 보내는 것처럼 아쉽지만 뿌듯하기도 하다. 어린 소녀, 아가씨였던 제자들이 미용실 원장으로 한 집안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지만, 그는 여전히 쌔롬미용실에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

/글·사진=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관련기사
[인천 삶, 소상인을 만나다] 5. 이병관 시장고기집 대표 이병관(49) '시장고기집'(부평구 백운 남로 21번길) 대표는 십정동 열우물전통시장에서 2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부친 이영근(76) 씨와 모친 김영애(73) 씨의 2남 중 장남이다.부친 이영근 씨는 리어카로 과일을 떼다 파는 과일행상이었다. 이 씨는 1987년 친분이 있던 정육점 사장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하고 시장고기집을 개업했다. 이병관 대표는 2002년 부친으로부터 가게를 이어받았다. 열우물시장은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시장고기집'은 35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대표 [인천 삶, 소상인을 만나다] 4. 신용준 신일상회 대표 신일상회(부평구 부흥로 304번길 27)는 부평진흥종합시장에 있는 식품잡화 도소매점이다.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잡화점이 연상되는 오래된 가게이다. 신용준(53) 신일상회 대표는 이곳에서 2대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 대표의 부친 신원범(87) 씨와 모친 안영자(84) 씨가 신일상회를 개업한 때는 1971년이다.지금도 부친 신원범 씨는 오전 6시에 가게 문을 연다. 신용준 대표는 오전 9시부터, 누나인 신주연(58) 씨가 오후 1시부터 가게에 나와 장사를 한다. 배달은 신용준 씨 [인천 삶, 소상인을 만나다] 3. 김해숙 기운차림 인천지부 사무국장 부평종합시장 골목 한귀퉁이(부평구 대정로 35번길 25)에 1000원짜리 점심을 파는 식당이 있다. (사)기운차림봉사단에서 운영하는 '기운차림 식당'이 그곳이다. '기운차림 식당'은 이곳에서 12년째 자리를 잡고 있다. 식당 손님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과 노점상 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김해숙 기운차림봉사단 인천지부 사무국장은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안살림을 맡고 있다. 비록 단돈 1000원이지만 돈을 받고 밥을 파니 그도 엄연한 소상인인 셈이다.“형편이 어려운 분들, 홀몸노인들 특히 시장에 위 [인천 삶, 소상인을 만나다] 2. 김명수 은성상회 대표 김명수(65) '은성상회'(부평구 부평 4동 251번지) 대표는 부평깡시장에서 21년째 야채·청과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명수 대표와 부인 최성자(64) 씨는 이곳을 생업 터전으로 삼고 아들 둘을 키우고 출가시켰다. 은성상회는 야채와 과일, 꿀 등 농산물을 도소매로 판매하는데, 도소매업을 병행하다보니 하루 일과가 바쁘고 일손이 늘 부족하다. 다행히 큰아들이 가업을 이으며 일을 돕고 있다.김명수 대표는 은성상회를 개업하기 전까지 건설·기계·공조설비 회사를 운영하던 중소기업인이었다. 사업은 번창해서 태릉선수촌 수영장과 [인천 삶, 소상인을 만나다] 1. 손명재 뷰티 플라워 대표 손명재(73세) '뷰티 플라워' 대표는 부평지하상가 한 자리(부평지하상가 나동 81호)를 지키며 27년 동안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손명재 씨는 남편과 함께 꽃가게를 운영하면서 1남 1녀를 키웠다. 손 씨의 딸도 네덜란드에서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며, 한국에 방문할 때면 손 씨의 꽃가게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기도 한다. 손 씨에게 꽃가게는 생업이기도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 삶의 전부인 셈이다.교복 자율화 등으로 의류업이 호황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옷 장사를 했던 손 씨가 꽃가게를 열게 된 이유는 꽃에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