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바뀐 청사진…세계 자유도시 꿈 '용두사미'

1994년 국제적 배후도시 개발 복안
2020년 인구 11만 국제자유도시 계획
이후 인천도시기본계획은 '우왕좌왕'
계획 변경만 24번…장기적 목표 부재

복합리조트 중단…에잇씨티는 소송전
아이퍼스힐 '대장동 특혜' 우려에 유탄
▲ 백운산에서 송산, 월미도를 바라본 모습(1990년대)./사진제공=김홍남 영종역사관 소장
▲ 백운산에서 송산, 월미도를 바라본 모습(1990년대)./사진제공=김홍남 영종역사관 소장

“세계인들의 도시기능을 갖춘 영종도를 만들겠다.”

제비가 날던 '자연도(紫燕島)'에 비행기가 떴다.

인천 영종도, 조용한 섬이 동북아 1등 공항을 목표로 싹 바뀌었다. 섬과 섬을 잇는 대단위 간척 사업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위용을 드러냈고, 산을 깎아 비행기 이동 경로를 조성했다. 섬 주변 갯벌을 매립해 사람이 살 공간을 마련했다.

1992년 첫 삽을 뜬 후 10년이 안 된 2001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 영종과 용유에는 공항 외에 각종 시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2022년. 영종도는 첫 목표대로 꿈을 이뤘을까. 섬 주민은 손사래를 치고, 행정가들은 원인 찾기에 나섰다. 개발시행자는 여전히 땅값 논란에 쌓였다.

무수히 바꾸고 수정된 영종도 각종 계획은 누더기가 됐고. 그렇게 영종도에서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영종도는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정확한 개발 목표 없이 흘러간다.

 


 

2040인천 도시기본계획 속 영종도 개발 계획 자료./자료제공·제작=인천시·이연선 기자

▲길 잃은 영종도

1994년, 당시 인천공항을 품은 영종도 꿈은 거창했다.

인천공항 배후지 영종도를 '정보'와 '통신', '레저'가 묶여 복합적인 기능을 갖춘 세계인들의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외국인들이 배후도시에서 자신들의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영종도 신공항(인천공항 명칭은 1996년 확정됐다)에는 승객의 발길이 줄어 동북아 항공 중심지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6월 발표된 신공항 계획안에는 서울시 면적의 1/3 면적인 약 2억1120만㎡(6400만평) 규모의 영종도 신공항 지역을 7개 구역으로 특화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배후도시로 그려졌다. 이에 용유도와 영종도 일부 매립지를 인종과 종료, 정치를 초월한 세계 자유도시로 만들어 국제회의장과 전시장을 갖추기로 했다. 영종도 남쪽 지역에는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국제금융가가, 삼목도는 외국인 전용 고급 주택지로 예정됐다.

▲ 영종도 제방 공사 풍경(1980년대)./사진제공=김홍일 영종역사관 소장
▲ 영종도 제방 공사 풍경(1980년대)./사진제공=김홍일 영종역사관 소장

앞선 1990년 6월15일, 영종도 새 공항 건설을 정부가 발표하며 2000년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심축 공항의 역할을 담당하고 마하 3∼5의 극초음속 여객기의 취항에 대비해 수도권 신공항을 세우기로 했다. 2년 전인 1988년에는 영종도 국제공항 계획을 내놓으며 “공산권 관광교류와 서해안시대에 대비한 동양 최대 규모의 새로운 수도권 국제공항을 조성한다”고 강조했다.

10년 후인 2001년, 영종도는 인구 11만명의 '국제자유도시'로 방향이 정해졌다.

인천시는 규제가 없는 외국인 자유투자 지역으로 개발을 목표로 1단계인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인구 4만8000명의 공항 배후도시로 개발하고, 2단계인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인구 8만5000명의 복합도시를, 3단계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인구 11만3000명의 국제자유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단계별 개발계획을 수립해 추진키로 했다.

▲ 구읍뱃터 풍어제 모습(1970년대)./사진제공=채명훈 영종역사관 소장
▲ 구읍뱃터 풍어제 모습(1970년대)./사진제공=채명훈 영종역사관 소장

시는 “공항 배후도시는 공항 종사자 주거 및 공항 관련 산업·물류 지원 등의 기능을 갖추게 되며, 복합도시는 배후도시에 국제업무와 물류 및 첨단산업·연구개발·관광레저기능을 추가한다”며 “국제자유도시는 외국인 개발과 투자 등에 대한 각종 규제가 폐지돼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역외금융도 가능한 도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제3연륙교를 2020년까지, 제2공항철도는 신공항을 출발해 인천역을 거쳐 경부고속철 남서울역을 잇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는 구읍 주변, 갯벌, 공항, 배후단지, 신공항 나들목(IC) 주변의 5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할 뜻을 세웠다. 이밖에 영종3지구는 상업·위락시설 등과 함께 중·고밀도의 주거 지역으로 조성되고, 백운산 남측(영종 2지구) 약 373만㎡(113만평)는 갯벌이 보존되면서 해안에 주택가가 들어서도록 했다.

그러나 2020 인천도시기본계획에는 영종의 국제금융도시의 꿈도, 세계 자유도시의 이상도 사라졌다. '공항의 배후지원 기능을 수행하면서 복합공항도시로서의 자족성 확보'가 기본 구상이 됐고, 용유·무의도가 국제적인 레저·관광단지로 일부 축소됐다.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은 또 바뀌었다. 다시 '인천국제공항과 연계된 글로벌 수준의 외국인 정주환경 구축'을 위해 개방성과 자유로움, 다양한 문화적 체험 제공이 포함된 것으로 신도 마린 아일랜드, 영종 왕산 마리나, 영종 미단시티가 외국인 정주환경 조성 문화거점으로 지정됐다.

그렇게 2030 계획에는 영종생활권 인구가 2015년 6만명에서 2030년 29만명까지 치솟고 이는 북도면 복합관광도시 조성, 제2공항철도 신설(KTX), 제3경인고속화도로(광명역 연계), 연도교 건설(모도∼장봉, 잠진∼무의)로 세부 계획이 세워졌다. 아직 북도면 복합관광도시 조성, 제2공항철도, 제3경인고속화도로, 모도∼장봉 연도교 건설은 구상 중이다.

2040 인천도시기본계획은 UAM(도심항공모빌리티)가 더해졌고, 사라진 국제금융 사업 가능성이 입혀졌다. 시는 “인천의 입지적 강점과 국제, 해양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제금융, 업무/문화 가능 강화 축을 설정해 영종-청라-검암-계양TV-서울을 잇겠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2040년 영종 인구를 17만명으로 낮췄다.

인천 전체 개발계획에서조차 영종 개발 방향이 수시로 바뀌며 영종 개발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기는 쉽지 않다. 영종 개발과 관련해 영종하늘도시 변경 계획안은 24차를 넘겼고, 영종만의 중·장기적 개발 목표는 사실상 전무하다.

 

▲ 인천도시공사가 영종도 미단시티 개발사업을 직접 추진하게 돼 사업 활성화가 기대된다. 사진은 미단시티 개발 현장 모습./인천일보 DB
▲ 미단시티 개발 현장 모습./인천일보DB

▲영종, 껄끄러운 그늘

2001년 인천 연수구 송도 개발에 장애가 되고, 인천 도심 확장을 가로막는 '미사일 부대'와 '레이더 기지'가 영종으로 이전된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발칵 뒤집혔다.

영종 주민들은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국제자유도시로 개발될 희망의 땅이 화약고로 변하게 됐다. 미사일 부대 이전을 적극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2015년에는 영종도 고도제한 문제가 터졌다. 가뜩이나 개발이 주춤한 미단시티에 악재가 또 터진 것이다.

이에 정부는 영종도 카지노 복합리조트의 고도를 종전 170m에서 150m로 낮추고, 공군 레이더는 49m 높이기로 했다.

영종도 복합리조트는 외국자본 리포&시저스(LOCZ)가 인천 운복동 미단시티 8만9000여㎡ 부지에 조성하는 복합 레저 공간이다. 현재까지 복합리조트는 골격만 드러낸 채 여전히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며 주목을 받은 에잇씨티 관련 국제 소송은 최근에서야 끝났다. 에잇씨티 조성사업은 지난 7월 국제중재(ICC) 소송에서 민간사업자가 패배하는 것으로 2년6개월간의 법적 공방이 마무리됐다. 에잇씨티는 영종도 용유·무의지역 79.9㎢(2500만평)에 사업비 317조원을 투입해 '8(eight)' 모양의 인공 문화관광레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으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며 2030년까지 마카오의 3배 크기, 여의도의 27개 규모의 복합리조트와 호텔, F1 경기장 등을 조성하기로 계획됐다.

이 사업은 지난 2013년 자본금 확보를 못 해 기본협약이 해지 예고됐고, 그해 8월1일 최종 해지됐다. 개발사업 시행예정자인 ㈜에잇씨티(SPC)는 협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사업계획 단계에서 지출한 각종 비용 603억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천경제청을 상대로 국제중재재판소에 제기했다.

다행히 영종도 인천공항 서편 제3국제업무지구에서 추진되는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오성산 아이퍼스힐(IFUS HILL) 사업도 길을 잃었다. 한류복합영상산업단지를 내세웠지만, 현 정부 들어 정책에 변화를 보이며 사업이 멈췄고, 민선 8기 인천경제청에서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 노력 중이지만 국토교통부에서 “자칫 대장동 특혜가 우려된다”며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정혜리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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